'3대헌장 기념탑 준공식서

"모두다 21세기의 위대한 태양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김일성, 김정일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떨쳐나갑시다."

지난 8월 14일 평양 통일거리 입구에 건립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준공식에서 행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준공사 마지막 구절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교의에서 보면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사상으로서 마땅히 투쟁과 극복의 대상이다. 이런 관점과 입장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왔다. 그런데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 커다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급보다 민족을 앞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의 실마리는 "우리 민족 제일주의"라는 용어를 등장시킨 김정일의 86년 7월 담화에서 맹아를 드러냈고,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그의 89년 12월 담화에서 "조선민족 제일주의"로 구체화됐다. 김정일이 말하는 우리민족제일주의 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는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위대한 당의 영도를 받으며,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규정됐다. 그는 "민족의 가장 큰 행복은 위대한 수령의 영도를 받는 것"이라고까지 공언했다.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입장선회는 김일성이 90년 8월 조평통 및 범민련 북측본부 간부들과 가진 담화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이 담화에서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이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계급의 이익도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일성민족"이라는 말은 94년 10월 김일성 백일재(百日齋)가 있던 날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간부들과 가진 담화에서 처음 언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며 김일성을 민족의 중시조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99년 평양출판사가 펴낸 "김정일 민족관"이라는 책은 우리 민족을 "만경대의 민족, 백두산의 민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백두산은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되는 곳이다. 김영남 위원장이 말한 김일성·김정일민족은 예의 "만경대의 민족, 백두산의 민족"과도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민족을 김일성 민족 또는 김일성·김정일민족으로까지 정의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김일성이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발전의 새 역사를 개척했고, 지난날 천대받고 수모 받던 우리 민족을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엄 높고 긍지 높은 민족으로 내세워 주었으며, 이북에 자주·자립·자위의 강력한 나라를 세워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민족의 민족성에서 핵을 이루는 것은 자기 수령에 대한 충효심이며 수령에 대한 충효심은 김일성민족의 훌륭한 민족성의 최고표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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