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서 야생동물인 고라니 일가족이 물속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연합자료사진

비무장지대(DMZ) 습지가 위협받고 있다. 이 습지들은 가시고기와 쉬리, 칠성장어, 황쏘가리, 수리부엉이 등 희귀 동식물이 다수 모여사는 생태계 보고(寶庫). 그러나 최근 느슨해진 사회분위기를 틈타 농지 개간이 활발해지며 습지가 훼손되는 일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서울대 김귀곤(환경생태계획학) 교수팀이 지난 4~12월 '비무장지대 일원 보호지역 지정을 위한 연구'를 통해 관찰한 이 일대 습지에는 사람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탓인지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이 적잖이 발견됐다.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 멸종위기동물 삵과 흰꼬리수리, 독수리, 천연기념물 원앙과 황조롱이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철원 월정리역 주변 습지는 농지 개간으로 가장자리가 많이 깎였고, 철원평야 논 습지는 석축(石築)이 습지와 산기슭 사이를 가로 막아 생명체 이동이 어렵게 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마고지 주변 습지는 외래종이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며, 양구 을지전망대 계곡과 펀치볼 주변 습지 등도 농지 개간으로 인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앞날도 순탄치 않다. 습지들이 대거 자리잡은 강원 민통선 부근이 주민들 민원으로 점차 접근 통제 지역에서 풀려가고 있기 때문. 국방부뿐 아니라 인수위도 비무장지대 군사시설 반경 500m 이내만 규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습지 훼손은 피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복원과 보전에 대한 대책 없이 경계선을 조절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올해는 습지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국제 환경 회의 '람사 총회'가 10월 경남 창원과 창녕에서 열린다. 습지 보호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일으켜야 하는 개최국이 거꾸로 습지를 파괴하려는 찰나다.

김 교수팀은 비무장지대 주변 습지 등 12곳에 대해 생물 다양성, 생태적 희귀성, 자생종 풍부 여부 등을 기준으로 '건강성'을 평가한 결과, 모두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는 "다른 지역 습지들은 겉으로만 멀쩡할 뿐 속은 엉망이다"며 이 지역 습지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 중 고성군 통일전망대 주변 안호 지역과 철원군 계웅산, 화천군 평화의 댐 주변 습지 등 3곳은 우선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의 댐은 수달, 계웅산은 왕버들, 달뿌리풀 등의 천국이었다.

환경부 자연정책과는 "지난해 1차 조사한 DMZ 동부 습지 중 일부는 보호할 방침"이라며 "올해 추가로 파주, 연천, 포천 등 서부 지역을 조사, 습지 보호지역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이위재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김수영 인턴기자(서울대 정치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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