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다.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한 마디로 말해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이유는 우리 민족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목적을 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경우 마치 통일이나 정상회담이 그 자체가 목적인 양 추구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남은 경제력으로, 북은 군사력으로 통일을 이루겠다고 서둘러댔으며, 그 결과 통일은 오히려 멀어져만 갔고 분단의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찬가지로 정상회담도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면 분단의 고통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

분단에서 온 문제들을 단시일 내에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꾸준히 서로 만나며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여 양자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러기에 남북관계의 개선은 경제협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북한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었던들 아마도 정상회담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 경제는 지금 소위 빈곤 함정에 빠져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북한은 자본시설이 계속적으로 마손되어 가고 있으나 이를 보충할 내부저축이 없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자본도입도 실패해 왔다. 그들은 지금껏 자력 갱생을 외쳐왔으나 결국 해외와의 관계를 통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이제는 깨달았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배워 점차 개혁과 개방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토대를 둔다. 아마도 이를 위한 대전환점이 이번의 남북 정상회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남한의 중소기업들이다. 급속한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있는 남한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그들이 지닌 기술과 자본을 활용할 기회를 북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질의 많은 노동력을 지닌 북한은 고도의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형 산업의 건설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지금의 경제발전 수준에서는 남한의 중소기업들의 대북투자가 가장 효과적이며 또 이는 그야말로 쌍방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윈·윈 전략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회담을 통해 이러한 중소기업들의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틀이 구축되어야 한다. 투자보장이나 이중과세 방지, 또는 과실송금 등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곧 과거 중동건설 특수와 같은 북한 특수가 있으리라는 성급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한 경제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기대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그러한 비현실적인 사업을 약속할 경우 북한과의 신뢰를 해치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대규모 투자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하에서 그러한 사업의 전개는 남한 기업들의 부실초래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대북 투자 사업에 대해 정부가 과도하게 지원할 경우 대북 투자에서 오는 위험성을 기업이 스스로 지지 않고 정부에 전가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 점을 활용하여 꼭 필요한 효율적 투자만을 유치하기보다는 부수적인 이득을 챙기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모처럼 이루어진 정상회담이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며 또한 최소의 비용으로 남한에도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협력사업들이 모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틀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주민들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고 아울러 남북 정상들의 교류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 확보될 것이다.

/ 이 영 선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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