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북한의 ‘매력적인 외교 공세’가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장 큰 공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정책과, 끝까지 북한의 손을 잡으려고 애를 쓴 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력에 있다.

남한이 남·북한 지도자의 만남을 경축하고 있긴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베를린 장벽 붕괴의 교훈과 동일시되기는 힘들다. 오히려 독일 통일의 험난하고 긴 여정이 시작된 헬싱키 협정의 초기 과정과 더 유사하다. 남·북한 신뢰 구축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평양이 남한에 접근하는 전술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인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누구든 이 중 한가지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도 부족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상회담에서 보다 긍정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신호들이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정일의 극비 베이징 방문(5월29~31일)은 남북 정상회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미국 관리는 이 베이징 방문을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과) 협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도로 해석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자들은 이 방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주요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방문은 한반도에서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국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만약 평양이 중국식 경제 개혁 모델을 채택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면, 북한이 근본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지난 수 개월 동안 그런 변화가 임박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주체적 사회주의’가 성공하려면, 해외로부터의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하며, 특히 논리상 남한이야말로 가장 큰 지원자이다.

외부로부터의 지원 유입 필요성과 함께 바로 이 점이 왜 김정일이 남한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 한편으로, “중국의 개방 정책이 옳다”고 김정일이 언급한 것을 볼 때 북한은 제한적인 개방을 할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예를 좇아 보다 단단히 통제를 가할 것이 틀림없다.

한·미·일 3국간의 점증되는 3각 협조 역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도움을 주었다.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에 대한 한·미·일의 정책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할 때 미국을 따로 떼어낼 수는 없다는 점을 평양에 분명히 했다.

한·미·일의 3각 협조 및 감독 그룹(TCOG)이 구성되고, 다른 나라는 젖혀두고 한 나라만 불러내 협상을 하는 평양의 입지를 좁히는 한편으로, 페리는 평양을 방문한 길에 이 메시지를 재확인시켰다. 이 점이 북한으로 하여금 결국 남한과의 직접 대화를 결심토록 만드는 데 기여를 한 것 같다.

평양의 동기야 어떻든 간에 남북 정상회담은 긍정적이고, 단순한 양 김씨의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만남인 것처럼 보인다.

이번 회담이 협력 증진과 긴장 완화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만약 북한이 진정으로 준비가 되어 있고, 평화 정착에 전적으로 참여할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 화해와 궁극적인 통일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무대는 만들어놓은 셈이다.

/ 랄프 코사 (Ralph Cossa)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태평양포럼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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