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의 하나이며 가장 첨예한 대립의 주제다. 그런 문제에 대해 아직 부임도 하지 않은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언급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21세기에 들어 한국은 더이상 보안법 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7년 전 자신의 발언은 미래지향적이고 전향적인 관점에서 말했던 것이라며 『많은 한국인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희망과 미래지향적 관점을 비판할 생각이 없으며 그 말의 타당성 여부를 논할 의사도 없다. 우리는 다만 그가 비록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라도 아직 주재국에 부임도 하기 전에 민감한 문제를 언급할 만큼 한국의 상황을 잘 아는 형편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허버드씨는 한국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는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두 차례 역임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일궈낸 외교관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근무한 적이 없다. 그는 어찌보면 한국보다 북한을 더 잘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많은 보수적 한국인들이 한국체제의 존폐가 걸려 있다고 믿고 있는 보안법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에 좀더 신중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한국에 와서 시간을 갖고 국가 보안법을 둘러싼 한국 내의 여러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이 왜 지난 수십년간 끈질기게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대남공세의 양 축으로 삼아왔는지에 대해 충분한 공부를 해주기 바란다. 그런 뒤에 「보안법과 한국과 21세기」에 관한 얘기를 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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