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통한문제연구소(nkchosun.com) 김미영기자입니다.

8월 30일 MBC가 어디에선가 입수해 온 비디오 테이프를 방영함으로써 탈북자 유태준씨가 북한에 살아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제가 3월 17일 유태준씨 '공개처형' 기사를 쓴 지 근 6개월만입니다. 6월 7일 평양방송 의 첫 보도 이후 6월 12일 기자회견, 8월 14일 기자회견, 그리고 이 비디오 테이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응답을 보내온 북한 당국의 ‘성의’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탈북하기 전 함흥에서 찍은 유태준씨의 사진(왼쪽), 99년 한국에서 봄나들이를 갔던 모습(가운데)과 최근 MBC가 입수한 비디오 테이프속의 유태준씨 모습(오른쪽).

아마 '유태준'이라는 무명 탈북자의 이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들은 여기 이메일클럽 'NK리포트'의 회원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공간을 통해 저는 끈질기고도 까탈스럽게 북한 당국을 향해 그의 구체적인 생존확인을 주문해 왔습니다.

이제 저도 그가 살아있음을 인정하고 제 오보를 독자 여러분께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이든 구구하게 늘이면 변명이 될 것이 뻔하지만 근 6개월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문제를 지켜봐 오신 여러분들께 제 감회랄까 뒷얘기를 들려 드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기자로서 유태준 관련 오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이 기사를 쓸 당시 제 스스로 "나는 인권운동가가 아니고 기자다"라는 말을 여러 번 새겼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과 취지더라도 언론은 사실 자체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짐했습니다.

'유태준 처형' 기사를 쓸 당시에도 이 원칙을 갖고 있었고, 결단코 저는 이 소식의 소스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유태준씨가 9개월째 실종된 상태여서 경찰에서는 이미 그의 신변을 정리한 상태였고, 둘째 탈북자사회에서는 그의 처형사실이 이미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었으며, 세째 정부 소식통 일각에서도 확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기사를 쓴다는 것도 ‘모험’일 수 있었습니다.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같은 물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이라도 그의 얼굴이 나타나 버리면 우스꽝스럽게 될 것이 뻔한데 ‘과감하게’ 기사를 쓴다는 것은 어느 신문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조선일보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반북모략'이니 '반통일책동'이니 비판을 듣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실을 그대로 묻어 버리면 유태준이라는 한 존재는 소리 소문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으므로 양심상 기사를 안 쓰기란 더욱 어려웠습니다. 북한을 음해하려고 의도적으로 기사를 썼다는 몇몇 독자들의 비판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6개월 동안 유태준문제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매달렸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그의 생존여부를 분명히 확인하지 않으면, 저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취재를 도와주었던 유태준씨 어머니에게도 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유태준씨의 어머니에게는 더 이상 마음의 빚을 지지 않을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오보로 판명이 나긴 했습니다만, 이번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해 온 한 인간으로서는 작은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고 감히 이야기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유태준 사건 이후 북한에 공개처형이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증언을 듣게 된 것도 기쁜 일이고, 북한과 기사를 통해서나마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점도 기쁨입니다.

어떤 선배 기자가 "북한기사는 오보 시인 기사를 쓰기가 더 어렵다. 오보라는 사실마저도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고 했는데 북한의 ‘협조’로 이번에는 가능하게 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조선일보와 외신, 그리고 이 이메일클럽 기사를 빠짐없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유태준의 기자회견 내용은 특히 이메일클럽에서 제가 제기했던 문제들을 ‘반박’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유태준씨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취재 협조는 물론이고 가족에게 위로 한 마디 없었습니다. 이번 테이프의 입수경위도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평양에서 북한 기자들만 참석한 회견 장면이 어떻게 북한 TV에는 방영되지 않고 한국의 방송을 통해 생존 사실을 확인해야 했는지 궁금증이 많습니다. 만에 하나 이 과정에 북한과 한국의 당국이 개입돼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당국이 유태준의 ‘비극’에 대해서는 그토록 침묵과 비협조로 일관해 놓고 그의 생존 확인에는 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그 자체가 서글픔과 분노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MBC가 이 비디오테이프를 보도하면서 유태준씨의 인권 보다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한 사실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유태준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랍여부'도 남아있고, 북한이 자신들의 공중파방송은 틀어막아 놓고, 왜 이런 식으로 유태준의 생존을 확인해야만 했는지, 그는 정말로 안전한 것인지 등등 규명돼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한국에 남아있는 아들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를 자유로운 공간으로 불러내 진짜 자신의 아들을 데려갈 의사가 있는지도 물어야 합니다.

슬쩍 얼굴 한 번 보여주고, 우리 방송국은 '이봐. 살았다잖아. 이제 입 다물어'식의 보도만 하고 말아서야 되겠습니까? 유태준씨 말고도 의문의 실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철저하게 그 전말이 밝혀져야 합니다. 북한당국의 계속적인 ‘협조’도 기대합니다.

저는 이번 일로 반성은 하되 북한 인권 문제를 파헤치고 개선하는 일에는 역시 철저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김미영드림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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