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규정한 ‘6·15 남북 공동선언’ 1항은 이중적 의미와 구조를 담고 있다. 우선 ‘자주’라는 말을 보는 남북 당국의 인식 차이가 크다. 우리 측이 사용하는 ‘자주’라는 단어는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이다. 반면 북측이 ‘자주’를 말할 때는 주한미군 철수 등을 포함한 ‘외세 배격’을 뜻한다.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 원칙은 이후 줄곧 남북간의 논란이 계속되어온 대목이기도 하다.

이 같은 논란은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체류 중에도 있었다. 14일 오전 북한 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 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에서 ‘자주’ 원칙과 한·미·일 공조 문제의 상관 관계를 거론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3국 공조는 북측에도 유리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모두 이기는 윈-윈(win-win)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6·15 선언의 ‘자주’라는 표현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양론이 분분하다. 고유환(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측이 주한미군 철수 등 외세배격의 입장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민족 문제의 당사자 해결 구도라는 우리측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평화문제연구소의 신영석(신영석) 소장은 “6·15 선언 1항의 자주는 ‘한·미·일 공조 배격’과 ‘주한미군 철수’라는 북측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1항의 ‘자주’ 원칙과 관련한 남북 정상의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두 정상이 명확한 개념 규정보다는 서로 편한 쪽으로 해석하는 외교적 모호성(ambiguity)을 택했을 것이라는 해석들이 우세하다.

‘자주’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는 정상회담 합의 이행 과정에서 언제든지 쟁점으로 등장할 잠재적 폭발력을 갖고 있다.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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