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주간조선 2001년 9월 6일자에 "요덕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기자 강철환의 남남갈등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편집자


"만경대는 북한독재의 시발점이자 혁명의 요람
'만경대 정신 계승' 운운은 북한 중심 통일 의미"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8ㆍ15 방북단(訪北團)의 일원인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가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평양 만경대에 가서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계승’ 운운한 것에 대해 배신감을 넘어 허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만경대가 어떤 곳인가. 개인적으로 내가 인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방문한 곳이 만경대였고, 그곳에서 나의 우상숭배가 시작됐었다. 평양시민은 물론 평양을 방문하는 모든 북한주민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바로 만경대다.

만경대는 북한의 독재체제의 시발점이며, 혁명의 요람으로서 성지(聖地)처럼 인식되는 곳이 다. ‘만경대정신 계승’ 운운은 북한 독재자의 정신으로 통일 위업을 이룩하자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북한주민들도 남한의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수령의 정신으로 통일하자는 것은 북한에 의해 통일을 이루자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즉 우상화가 광적으로 이뤄지는 북한에서 보면 정말 영웅다운 행동인 것이다.

강정구 교수 이외에도 백두산에 올라 훌륭한 장군님을 부르며 절을 한 한총련 학생들의 행동은 김일성ㆍ김정일 부자(父子)에 대한 우상숭배가 남한의 일부 운동권 대학생들 속에서 얼마나 뿌리깊게 진행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과거 운동권학생들 속에서 주체사상이나 북한의 김 부자를 우상 숭배하는 사례가 극심했다. 또 남한체제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과 공격은 서슴지 않으면서 전대미문의 세습독재를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게, 그리고 찬양해오는 것을 보면서 정말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었다.

만경대는 북한 독재체제의 시발점

그리고 그들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주체사상 학습이나 미군 철수 주장 등 모든 행동들과 구호들을 보면 북한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것들을 단순히 남한학생들이 자생적으로 벌이는 행동으로 볼 수 없다.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이들을 조종하고 충동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평양통일축전에 참가했던 우리측 방북단이 돌아온 지난 8월 21일 서울 김포공항 구 국제선2청사 앞에서 방북단 일부 인사의 행동을 규탄키 위해 이곳에 온 '6.25참전전우회' 회원들과 방북단을 환영하러 나온 대학생이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남한의 주체사상의 대부(代父)였던 김영환씨가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난 것은 북한이 남한의 운동권세력들과 북한 추종세력들을 위해 얼마나 큰 관심과 투자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공작원 출신의 탈북자들에 의하면 통일전선부, 사회문화부 등 공작원들은 남한내 진보세력들을 포섭하고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에서 대남(對南) 관련 부서는 그 어느 부서보다도 막강하다. 남한에 한번 침투해 성공할 경우 북한공민의 최고훈장인 공화국영웅 메달을 수여하며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평생을 보장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

이번 8ㆍ15 방북단 사태는 결코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을 좋게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북한을 공산주의 이념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북한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광적인 우상화가 진행되고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끔직한 나라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알면서도 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이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비극적인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지독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북한의 끈질긴 공작의 결실이다. 나는 대학교수든 학생이든 그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다고 해서 탓하고 싶지는 않다. 사상의 자유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을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가 없다. 이미 북한은 그 어떤 공산주의 이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고 절대적인 우상숭배와 독재권력만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친북인사들이 진실로 북한 인민이 겪고 있는 아픔을 조금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떻게 그런 몰상식한 행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또 그들은 자신들이 북한에서 벌인 그러한 행동이 민족 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짓는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무지몽매한 주민들을 우상숭배에 동원하는 데 이용된다. 북한 주민들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더욱 더 광신적인 우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북한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북한의 잘못된 점을 비판했다거나 하는 행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래서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의 개혁개방은커녕 오히려 그들의 위협 앞에 우리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김일성 생가라는 만경대에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이라고 써 파문을 일으킨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8월 21일 김포공항에 들어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따라서 어떤 전략도 전술도 없는 대북 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키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우리의 무분별한 지원은 북한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를 더하고 있다. 이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이 크다. 현 정부 들어 간첩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지가 오래 됐다. 또 간첩죄를 짓고도 인권과 인도적 처사에 의해 미미한 처벌만을 받고 풀려나고 있다. 또 간첩을 잡는 대북 관련 부서들은 요즘 ‘찬밥신세’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이 나라의 기강은 해이해지고 있다.

기강해이는 국민들에게도 파급되고 있다. 이미 300만의 주민이 굶어 죽고 북한경제가 형편없이 하락했다고 해서 그들을 너무나 얕보고 방심하는 풍조가 늘고 있다. 국민들도 그러니 무조건 도와야 한다느니, 말없이 도와주기만 하면 북한이 저절로 변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착각 속에 물들고 있다. 요즘 남한 국민들은 북한의 위협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분위기다. 또 일부에서는 북한을 비판하고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북 지원을 하자고 해도 남북화해를 원치 않는 보수반동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 비극적인 예가 지난 8월 21일 김포공항의 상황이다. 귀환하는 방북단을 둘러싸고 이들을 환영하는 세력과 이들을 규탄하는 세력과의 대치상황은 남한 내 반북(反北)ㆍ친북 세력간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방북단의 돌출행동을 옹호하는 일부 학생들의 행동이 너무 어처구니 없고 한심해 보였다. 저들이 과연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고 저러는 것인지, 북한에서 조금이라도 살아 본 뒤에도 저럴 수 있을 것인지….

친북 인사 "북한 기아는 미국 때문"주장

이번 사태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명백히 드러났다. 이제 성급한 행동보다는 차분하게 북한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그것이 시행되지 않으면 강력하게 요구할 때가 온 것 같다. 또한 명백하게 드러난 친북적이고 반민족적인 행동을 하고도 반성은커녕 변명만 일삼는 일부 친북적인 사람들은 무엇이 민족을 위하고 특히 북한사람들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자성해야 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북한 주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친북적인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북한이 굶주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니 뭐니 한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눈뜬 소경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3000만명의 인민들이 굶어죽은 것은 모택동에 대한 우상화와 집단농장 폐해의 결과이다. 북한주민 수백만이 굶어 죽는 것도 이런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등소평의 인민을 의한 개혁개방정책이 얼마나 옳았는가는 오늘의 중국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친북인사들은 이마저 부정하려는가.

거대한 러시아와 동유럽이 이미 공산주의를 폐기 처분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는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사회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상과 이념이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북한의 독재권력에서 굶주리고 초보적인 인권도 말살당하는 인민들을 구하는 것이며, 북한식 독재체제가 아닌 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위업을 이룩하는 것이다. 친북인사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북한식 독재체제로의 통일을 획책한다면 남북한 주민 모두가 용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이 될 것이다.

강철환 기자ㆍ92년 탈북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조총련 간부였던 조부가 숙청되면서 77년부터 87년까지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생활했다. 92년 탈북, 한국서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의 수용소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해왔으며, 2000년 11월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가 됐다. 저서로 `대왕의 제전' `평양의 어항'(영어-프랑스어판) 등이 있다.






현 정부의 이념적 스펙트럼
신자유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다양…
이질복합성 확대재생산되어 '국정혼란'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ㆍ정치행정학

지금 나라는 심각한 이념대결 상황을 맞고 있다. 초기에는 소위 개혁세력이 반개혁, 반통일, 수구보수세력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편가르기가 언론사태와 평양축전 참가 이후 좌파세력에 대한 우파세력의 비판으로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특히 우려가 되는 일은 정부여당과 정치권이 사회적 균열을 통합, 치유하기보다는 도리어 정치적 동기로 이를 일부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이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권력의 한계를 사회세력의 지원을 통해 보완하고자 하고 이를 야당과 일부에서 '색깔론'으로 비판하면서 사회적 균열과 편가르기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대결 양상으로 심화, 확대된 것이다.

선진국들이 어떤 형태로든 좌파와 우파의 상호 경쟁을 제도를 통해 생산적인 사회발전 동력으로 활용한다. 좌파와 우파가 중도를 향해 서로 통합되고 있는 점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이념적 대결이 많은 경우 상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끝없는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을 더하게 한다.

지금의 이념적 대결이나 논쟁이 다원주의 민주사회를 열어가는 과정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오해와 편견을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특히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도 정책의 이념적인 성격에 대해 떳떳이 밝히고 당당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도로 주요정책에 나타난 현 정부의 이념적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종합적으로 볼 때 현 정부의 이념적 노선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결합시키는 '제3의 길의 한국적 응용'으로서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를 혼합한 복합적인 성격을 띤다. 정권 출범 초기 경제분야에는 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여 노동조합이나 진보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사회안전망'을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정책들이 광범위하게 추진되어 이번에는 보수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둘째, 구체적으로 보면 금융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공공부문개혁 등 IMF의 요구로 정부가 추진한 4대 개혁정책들의 이념은 신자유주의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도 우파적인 정책들이지만 4대 개혁의 추진이 시장기능에 의한 자율적인 방식이 아니고 정부주도로 획일적으로 추진되면서 '반(反)시장주의' 방법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있었다.

특히 재벌개혁의 내용이 빅딜과 국가개입 및 정치논리에 의해 과격한 급진성을 띠고 노동개혁이 노사정위원회에 의해 정부주도로 진행되며 구조조정에서의 퇴출과 합병이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실질적인 국유가 확대되면서 '반자본주의'와 '반기업주의'가 비판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미국식의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현실과 지니는 거리로 인해 정책의 내용 자체보다는 추진방식과 기업정서에 비추어 '좌파적 성격'으로 규정, 오해될 수 있었다.

셋째, 의보통합, 의약분업,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립학교법 등 사회정책은 사회민주주의에 친화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것은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사회통합 및 복지국가실현을 통해 자본주의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무리한 평등주의적 의료정책의 내용, 전문가적 합리주의 대신 포퓰리즘적 추진, 사유재산권 침해와 교육자율성 후퇴, 재정능력 한계와 국가채무 등으로 정책내용을 '좌파적인 것'으로 규정, 오해하도록 한 요인들이다.

넷째, 햇볕정책과 답방 등 대북정책과 주한미군이나 일본교과서문제에 관한 대미ㆍ대일정책의 경우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책내용 자체도 다소 문제가 되지만 정책수행과정의 투명성, 신뢰, 정치적 의도 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북한의 변화와 주한미군허용여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한 해석, 상호주의문제, 답방 관련 정치시나리오, 음모론 등에 대한 정파간, 사회세력간의 견해 차이는 이념이나 사상차원을 넘어 국가기반이나 정통성 문제와 겹쳐 가장 위험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의 주요정책에 나타난 이념적 스펙트럼은 신자유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다양하면서 이질 복합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로 인해 잘 할 경우에는 좌파나 우파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지만 잘 못할 경우에는 양자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책내용 그 자체보다는 정책에 나타나지 않은 정치적 동기나 의도 및 정책의 추진방식의 문제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표방한 소수정권으로 보수정당인 자민련과의 연립으로 정권을 출범시키면서 정책적인 이질복합성이 하나로 통합되기보다는 연립정부와 집권세력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재생산되어 국정혼란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에 민주당정부는 사회세력을 지배연합의 파트너로 삼으면서 '포퓰리즘과 홍위병'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책추진방식으로 인해 정부가 '좌파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하는 요인이다. 이제 정부여당은 당당하게 정책내용과 추진방식을 밝혀 '서민과 중산층의 정부'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는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대상과 정부의 성격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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