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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남 준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길’ 호랑이처럼 강한 한민족… 새천년엔 비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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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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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조선일보에 신년 원고를 보내왔다. 이 글은 일반 기고와 성격이 다르다. 백씨는 지금 왼손과 왼다리를 전혀 쓸 수 없고, 한때 언어장애까지 겪었다. 그래서 건강 문제로 그는 최근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백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 조선일보 신년호를 통해 한국민에게 새 천년 메시지를 꼭 전달하고 싶었다”며 “시간 날 때마다 한글과 영어, 한문을 섞어 ‘조선일보용 글’을 써왔다”고 했다. 그는 A4 용지 9장에 육필로 쓴 이 글을 조선일보에 보내왔다. 전화를 통해 글로 못다 쓴 내용을 구술하기도 했다. 백남준씨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지나간 20세기 한국은 억울한 외침(외침)의 희생이 되었다. 치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우리가 세계 중심으로 나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런 황홀한 상상을 해본다. 해저 터널이 일본 큐슈에서 인천과 중국 상하이에 이르고, 다시 베이징을 거쳐 모스크바, 파리까지 고속도로를 만든다. 한국은 동양의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아시아 대륙은 EU와 북미 시장을 합친 규모의 대시장이 되어서 한국 경기는 끝을 모르고 상승한다. 인천의 새 공항이 국제 중심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인천공항 옆에 라스베이거스 같은 대 유흥도시가 생긴다. 특별 제작한 고속 침대차를 부산에서 타면 파리까지 1주일이면 간다. 그 안에서 한국인들은 금발 미인의 서비스를 받는다. 그리고 한국의 우월한 문화가 세계로 나가, 우리 굿은 하버드대 필수과목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디지털 정보혁명, 그리고 이어 닥칠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물결을 잘 타야 한다. 나는 이미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혼합 이벤트를 통해 디지털-정보통신시대 개막을 예언했다. 이제 예술은 정보, 과학기술 결합을 통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은 그 흐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앞서 뛰어야 한다. 나는 뉴욕서 손재주 있고, 예술적 감수성 강한 이 민족이 정보력이나 기술력에서 뒤처지는 바람에 일본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걸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21세기는 흔히 디지털시대라고 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마치 생활처럼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커오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컴퓨터를, 인터넷을 마치 볼펜이나 전화기 다루듯 할 수 있게 배려하는 일이다. 그게 한국의 미래다.

또한 다음 세기 한국은 젊은이의 창조력과 모험심 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 부단한 시도와 실패, 그리고 그 가운데 얻어지는 노력속에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무엇보다 예술가든 기업가든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개척해야 한다. 19세기에 프랑스 인상파 화가는 눈을 위한 새로운 쾌락을 창조했다. 20세기에는 영화와 록 음악이 창조돼 커다란 신산업이 되었다. 다음 세기는 뭘 할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레이저로 새 쾌락을 창조해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려 한다. 누구나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큰 과실을 얻는 법이다.

나는 오늘 오전 0시 0분 0초에 임진각서 열린 ‘DMZ 2000’ 퍼포먼스에 출품한 비디오 아트 ‘호랑이는 살아 있다’에서 노래를 불렀다. ‘금강에 살으리랏다’다. 가사를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내 비디오 작품속에 서투른 노래를 집어넣은 이유는 하나다. 통일을 염원해서다.

남북이 통일이 되어 금강산에 1년에 일본인 100만명이 관광하러 오고, 또 강원도 스키장에는 동남아와 남쪽 중국인 청년 100만명이 스키를 타러 와서 우리는 사교(사교)의 중심이 된다. 200만명이 머물며 1인 100달러만 쓴다 해도 2억달러가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IMF 빚쯤은 하루 아침에 갚아버린다.

북한 노동력으로 우리의 수출품은 인건비가 반감된다. 한국서 번 돈으로 북한인 1000만명이 자동차와 냉장고를 사고, TV VCR를 사면 남북한 경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한국 교포는 우리와 관세를 철폐하고, 과거 일본의 만주국같이 되어 더욱 우리의 수출을 자극한다.

이제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 경쟁이다. 남북도 이제 서로의 실리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전기를 새 세기에는 기필코 마련해야 한다.

언젠가 월간조선이 부록으로 판매한 북한 제작 ‘맹수 대결’ 비디오를 봤다. 여기서 백두산 호랑이는 아프리카 사자와 혈투해 승리한다. 이 비디오는 김일성 정권이 체제 수호 차원서 만들었다지만,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호랑이는 한국민 전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호랑이의 이미지를 21세기 한국인의 상징으로 삼고 싶다. 한국인들이여, 호랑이처럼 강하고 자신있게 새 세기를, 새 밀레니엄을 맞자. 한국인은 살아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누구인가

32년 서울 출생으로 일본 동경대 미술사학과를 나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서 음악수업을 했다. 84년 그 유명한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세계에 방영했다. 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 미국 미술전문지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20세기 25대 미술작가에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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