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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는 청소년 자녀들에게 “공부해라”는 말을 가장 자주하는 데 비해, 북한에선 자식에게 “말조심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부장적 가치관과 국가 통제가 강한 북한의 청소년들은 권위적 체벌이나 자아비판에 익숙한 ‘덜 자란 아이’로 자라는 반면, 과잉보호와 경쟁에 길들여진 한국 청소년들은 극심한 개인주의를 보이는 ‘웃자란 아이’가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이 같은 사실은 연세대 의대 민성길(민성길·57) 교수가 탈북자 13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탈북 청소년 3명과 직접 면담해 밝혀낸 결과로, 최근
합동참모본부는 16일 오후 2시15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약 4마일 지점인 백령도 서북쪽 2.3마일 해상에서 북한 민간선박 한 척이 표류중인 것을 발견, 해군 고속정을 현지에 긴급출동시켜 예인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합참은 “조난 선박은 5 급 목선으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탈진상태의 남자 2명이 승선하고 있었고, 사고 당시 옷을 흔들며 구조요청을 했다”며 “이 선박을 백령도로 예인한 뒤 표류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 주변에서는 이들이 탈북자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정병선기자 bschung@
언제부터인가 북한의 젊은이들 속에서는 정체불명의 노래들이 불려 지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들은 중국연변의 조선족교포들의 노래로 대부분 소개 되는데 나중에 알고보면 이들 노래는 거의 남한노래였다. 10대나 20대초반의 젊은이들은 어느 사회든지 모험심은 강하다. 북한의 젊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딱딱하고 수령우상화 노래 일색인 북한노래에 신물이 나있던 젊은이들에게 남한의 사랑노래는 마약처럼 헤어날 수 없게 그들의 가슴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 북한전역에 내려진 포고령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북한의 청년돌격대는 북한의 여러분야에
탈북인들이 남한에 와서 놀라는 것들 가운데는 아파트나 큰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고층건물이 쭉쭉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해 한다. 북한에서는 1985년 이후부터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한 여러 가지 행사를 맞아 수도 평양을 현대화하기 위한 공사를 본격적으로 벌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평양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건설이다. 수만 가구를 한꺼번에 짓는 대형공사였기 때문에 엄청난 외화와 인력이 투입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돌격대원들과 인민군 군인들이 건설장에 동원되어 인력
누군가가 말했듯이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반드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남한에는 소설이라든가 영화, 드라마 등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사랑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회와 생활의 이슈로 등장하고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없이는 아예 이야기거리가 안되니 말이다. 북한에도 사랑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던가 하는 일은 아주 예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신상옥감독이 북한에 가서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느꼈고 또 북한주민
우인희는 1960~70년대 북한 주민들에 의해 최고의 미인으로 꼽힐만큼 미모가 뛰어났던 여배우였다. 그는 '목란꽃,' '한자위단원의 운명,' '세동서'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북한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우인희가 1970년대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 지시에 의해 총살을 당하게 된 것은 돈 많은 재일 교포 주정기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그와 정사를 가진 후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됐다. 당시 이들이 발견되었을 때 주정기는 벌거벗은 채로 가스에 중독돼 완전히 숨진 상태였고 우인희는 목숨이 겨우 붙어 있는 상황이었
남한에 와서 처음 맞은 명절이 추석이었다.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직원들은 탈북자들이 명절을 전후해 넘어와 사람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고 투덜거렸다. 얼마나 크고 중요한 명절이기에 저럴까 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북에서는 추석이 조상 묘에 다녀오는 하루 휴일 정도의 별 볼일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TV를 보니 추석이 민족최대의 명절이라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 차량들로 도로가 꽉꽉 막혔다는 등 온 나라가 그야말로 대명절 분위기였다. 그러나 제 스스로가 추석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실감하게 된 것은 아마 남한에 와서 3년 정도 지났
◇사진설명: 북한에서 생산되는 고급 담배들.최근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담배를 끊고 강성대국 건설하자" "백해무익한 담배"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놓고 금연운동을 벌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의하면 1993년 기준 1인당 담배소비량은 4kg 으로 쿠바, 불가리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다. 이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지만 남한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피우는 여과담배는 북쪽에서는 특권층이나 피울 수 있는 담배다. 북한주민들이 주로 피우는 담배는 '마라초'다. 마라초는 잎담배를 개인이 잘게 썰어 종이에 말아 피우는 담배다. '조
전 세계가 감탄한 北韓의 집단체조는 사실 북한 말고는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때에는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민군 특수부대의 무술훈련시범까지 실시 되었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몇 년에 한번씩 하는 행사가 아니다. 엄청난 인력과 자금이 소요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몇 번씩 진행할 정도로 그 빈도가 높다. 특히 외국의 중요한 국가수반의 방문이나 나름대로 의미가 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연례행사처럼 진행하는 것이 집단체조이다. 보통 6만명 규모이지만 올
◇사진설명: 북한에서 생산되는 여러 종류의 고급 술들.추운 지방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남한사람보다 북한사람들이 술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함경북도에 가까운 지방일수록 추운 지방답게 독한 술을 즐긴다.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술을 좋아한다. 탈북자들 대부분이 남한에 와서 처음에 놀랍기도 하고 기뻤던 것은 받는 월급에 비해 술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술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술도 너무 자주 먹다보니, 만
▶평양의 한 신혼부부가 야외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한국에 와보니 50년간의 오랜 분단도 한민족의 전통을 완전히 다르게 할 수는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남한에도 시골에 가면 결혼식풍경은 북한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결혼식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같은 민족이면서 달라진 우리의 전통, 결혼문화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본다. 북한의 결혼식은 대부분 전통 혼례식으로 치러진다. 단지 전통한복의 착용이나 신랑신부 맞절 등의 전통방식은 거의 없어졌다. 여자들만 한복을 입고 남자들은 양복을 입는다. 복장 외의 것은 대부분 전통
북한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이외에는 여행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철도는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버스는 주로 시내나 군내에서만 운영이 되고 있다. 남한의 고속버스처럼 타지역까지 운행되는 버스는 전혀 없다. 또 대부분의 버스는 기차역까지의 운행이 전부이다. 기차 이외의 수단으로는 드물기는 하지만 트럭이 이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동차(트럭)운전사와의 개별접촉을 통해 뇌물을 주고 화물칸을 이용한다. ◇사진설명: 출구가 따로 없는 일반기차◆ 유일한 여행 수단인 기차이처럼 기차
▶중국에서 바라본 혜산시의 일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가 자주 내려가는 곳이 있다. 좋은 일 때문이 아니라 아주 안 좋은 일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압록강을 끼고 중국 장백현이 눈앞에 보이는 북한의 변방도시 혜산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도시 가운데서는 신의주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강폭이 좁고 추운 겨울이 3∼4월까지 계속되는 관계로 두터운 얼음이 4월 중순에야 완전히 풀린다. 기나긴 추운 겨울은 밀수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국경지대로 가는 통행증은
요즘 북한에서는 과거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평양을 제외한 지방도시의 기차역 앞에서 점쟁이들이 책까지 펴놓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광경이다. 불과 1990년 초만 해도 내놓고 점을 본다는 것은 사상적으로 크게 처벌될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이었다. 원래 북한은 모든 종교를 허용하지 않았다. 기독교, 불교는 물론 점보는 것조차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기독교나 불교만큼 심하게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평양에서 점을 봐주다 걸리면 바로 지방으로 추방됐다. 1995년부터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사람들의 운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
북한 주민들에게 생애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꼽는 그 날은 노동당에 입당할 때이다. 대학 진학이나 결혼때보다도 더 기쁘다고 한다. 당원이 되면 신분이 바뀐다. 북한사회의 ‘양반’이 되는 것이다. 당원이 되기는 참 어렵다. 인구의 10% 정도인 당원이 되면 누구나 달리 본다. 결혼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직장에서 간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사진설명: 한 여성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화선입당식'을 갖고 있다.당원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은 군에 입대해서 만기제대하는 것이다. 모든 군인이 당원이 되는 것은 아닌데
"식량사정 어려워지면서 인간도살장 방불" 북한의 강제수용소인 요덕수용소(15호 관리소)에 1994년 4월부터 1999년 1월까지 5년간 수용됐던 인민군 중위 출신의 이백룡(가명, 42) 씨가 탈북해 한국에 왔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근접 경호하는 친위부대에서 11년간 복무한 뒤 고향의 당 간부로 배치받았으나, 남한방송을 청취하다가 발각돼 중국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거기서 남한대사관 직원으로 위장한 북한요원에게 속아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체포돼 온몸을 깁스당한 한 채 평양으로 압송됐다. 보통사람 같으면 즉결 처형감이었지만 한
◇사진설명: 작년 10월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는 김정일위원장을 뒤에서 경호하고 있는 군인은 친위부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인민군 호위총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경호하는 부대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으나, 이와는 별도로 김위원장을 밀착 경호하는 2000 명의 최정예 친위부대가 있다고, 이부대 소속이었던 이백룡씨는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관저나 별장등에서 근무하는 친위부대 소속원들은 한 개 군에서 한 명이 뽑힐까 말까 할 정도로 학업성적과 신체조건이 우수하고 12촌까지 출신성분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대개 고등중학교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1년 8월 19일 첫째아들 김정남과 찍은 사진. /성혜랑의 '등나무집'에서김정일 국방위원장(1942년생)은 내년에 회갑을 맞는다. 그의 장남 김정남은 올해 만 30살(1971년생)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197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지만 후계자로 거론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인 1972년 김일성 주석의 환갑 즈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정일은 만 30세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경우를 감안해 지금쯤 후계문제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