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보내온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200명의 명단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만나고자 하는 가족·친척이 확인된 사람이 100명을 넘어섬에 따라, 최종 100명을 어떻게 선정할지 정부와 대한적십자사 등이 고민 중이다. 남·북한 적십자 간 합의서에는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을 누가 최종 선정할지에 대해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다. 북 측은 각각 상대 측이 최종 100명을 선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 측은 자기 측이 최종 100명을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6일 후보자 200명의 명단을 교환하면서, 각각 생사
16일 북측에서 명단을 보낸 200명은 거의 다 6·25전쟁을 전후해 북으로 올라간 사람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자진 월북’인지 ‘끌려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상당수의 남한 가족들은 ‘끌려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체제 특성상 서울 방문단에 포함될 정도라면 자진 월북했거나 최소한 ‘끌려간 뒤’에라도 북한 체제에 잘 적응해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으로 이 부분은 이산가족 내부에서, 또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월북자’ 가족들은 그 사실을 쉬쉬하고 살아
17일 전쟁기념관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6·25 전쟁 5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전’에는 개장 첫날인 지난달 25일을 제외하곤 가장 많은 90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전쟁의 참상을 통한 평화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방학을 맞은 초·중·고교생 등 자녀를 동반한 학부모 등 관람객들이 이날 아침부터 몰려들기 시작, 전시퀴즈 기념품인 군번줄과 포스터 등을 무료제공하거나 판매하는 기념품 코너엔 한때 관람객들이 50여m 이상 줄을 서 있기도 했다. 수원에서 부모와 함께 올라온 S초등학교 4년 민성수(10)군은 “6·25 전쟁이 북한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류인자(59)씨는 간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1·4후퇴 이후 49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게 됐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얼마 전 상봉신청에서 탈락한 뒤 낙담한 가슴을 가누지 못해 빛바랜 부모님의 사진을 보며 눈물만 짓고 있던 터였다. 류씨의 아버지는 북한의 원로 국어학자 류렬(82)씨. “헤어질 당시 아버지는 34살, 맏딸이었던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죠. ” 아버지는 인자씨를 어머니(정자애·당시34)의 친지에게 딸려보내며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와
“오늘은 왜 자꾸 내 눈시울이 뜨겁노. ”북한 김일성대학 조주경(69) 교수의 모친 신재순(신재순·88·부산 서구 서대신3동) 할머니는 “내가 생전에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눈시울을 훔쳤다. 아들이 2살 때 남편을 떠나보내고 청상으로 아들만 보고 살던 신 할머니는 6·25 발발 직후 19세 아들과 생이별을 했다. 집 벽장 안에 숨겼는데 인민군이 찾아와 끌고 간 것. 신 할머니는 “아를 찾아 몇 달을 헤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고, ‘하마 올까, 하마 만날까’하다가 벌써 50년이 됐다”고 했다. 신 할머
북한 측의 이산가족 명단이 발표된 다음날인 17일, 이산가족들은 지난 50년간 가슴에 묻어뒀던 한과 사연들을 털어놓으며 재회의 날을 기다렸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형님이 살아계시다니 심장이 멎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보내온 명단에 형 영만(69)씨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효만(65·부산 수영구 남천동·양조업)씨는 가족들을 끌어안고 눈물만 흘릴 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형과는 지난 50년 7월 이후 소식이 끊겨 의용군에 끌려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동안
“다른 이산가족을 찾아 주면서도 월북자 가족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내 혈육을 찾겠다는 생각을 못 했었어요. ”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진행을 맡아 전국에 이산가족 신드롬을 만들었던 아나운서 이지연(여·53)씨는 17일 북에서 친오빠 이래성(68)씨가 남쪽의 가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후 한국적십자사를 찾아와 이산가족 확인 결과서를 작성한 이씨는 “70년대까지 매달 한 번씩 형사들이 찾아와서 감시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는 티도 내지 못했다”며 “전 민족적 행사에 개인감정을 앞세울
“거실에 걸린 실경산수화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만나온 오빠였어요. 이제 꿈이나 그림 속에서가 아닌 실제의 오빠를 만나게 된다니…. ”북한에서 오빠 정창모씨(68·인민예술가)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정춘희(61·경기 군포시 산본동 수리한양아파트)·남희(53·전주시 효자동 남양맨션)씨 자매는 17일 “생존사실은 10여년 전부터 알아왔으나 막상 만나게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못이뤘다”고 말했다. 오빠 창모씨는 서울과 광주에서 다섯 차례나 전시회가 열릴 정도의 조선화의 거장. 자매는 13년 전 LA 한인신문에 실린 오빠 관련 기사를
“몇개월만 더 사셨으면 꿈에 그리던 맏아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어머니가 형님을 얼마나 그리워 하셨는지 모릅니다. ” 북한 적십자회가 전달해 온 8.15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원인 박종섭(박종섭·68)씨의 동생 종열(종열·66·농업·충북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씨는 “죽은 줄 알았던 형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남쪽의 가족을 찾고 있는 박종섭씨는 6.25 발발직후 마을 청년 6명과 함께 1차 의용군으로 끌려간 후 소식이 끊겼다. 불과 18살의 앳된 고교생이었던 종섭씨는 인민군에 이끌려 집을 나간후 50년동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분간이 안갑니다. ”큰형 백남두(백남두·69)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언론기관을 통해 전해들은 백남성(백남성·63·대전시 서구 내동 코오롱 아파트)씨는 실감이 안난다는 표정이다. 큰형 남두씨는 19살이던 50년 7월 10일, 인민군이 대전을 점령하고 있을때 갑자기 행방불명됐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살았다면 형이 북한에 있는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여태껏 적십자사에 신청도 안하고 있었다. 큰 아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부모님도 70년대 각각 사망하고 남성씨도 2남1
오는 8월15일부터 18일까지 3박4일 동안 서울을 방문할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의 숙소는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과 만나는 남쪽의 가족들 중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은 인근의 잠실 롯데월드 호텔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이산가족 100명과 남쪽 가족·친척 전체가 만나는 상봉은 잠실체육관 등 대규모 장소에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측 방문단이 머무는 워커힐 호텔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의 개별 상봉도 이뤄질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북한적십자회가 16일 보내온 8·15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200명 중 17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남한 가족의 생사와 소재가 확인된 사람은 158명이라고 한적(한적)이 밝혔다. ▶관련기사 3·4·30·31면 한적 관계자는 이날 “북측이 전달한 명단을 언론에 공개한 이후 빠른 속도로 남측 가족의 생사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라면 이르면 하루 이틀 사이에 200명 전원에 대한 생사 확인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늦어도 19일까지는 생사와 소재 확인은 모두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측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베이징에 도착, 3일간의 중국 공식방문에 들어갔다. 푸틴 대통령은 19일까지 중국에 머물며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국가미사일 방위체제(NMD) 구축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포함, 세계의 전략적 균형유지, 탄도요격미사일(ABM)조약 준수 등을 미국에 촉구할 방침이다. 그는 특히 중국에 이어 19~20일 북한을 방문,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러·북간의 군사 경제협력 관계를 다진 뒤 일본 오키나와(충승)에서 열리는 세계 주요 8개국(G8) 정상회
이만섭(이만섭) 국회의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52주년 제헌절 경축식 연설에서 “남과 북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와 최고인민회의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논의하자”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 회담을 공식 제의했다. ▶관련기사 4면이 의장은 또 “국회차원에서 북측 정치인들과 민족의 장래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수 있는 모든 방안과 절차를 강구할 것이며, 여야가 이 문제를 숙의하는 남북관계특별위원회 구성, 남북국회회담에 따른 실무준비위원회와 실무기획단 구성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철기자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돌파구가 열렸음에도 불구, (남북한이) 완전한 통일에 이르는 데는 20~30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 17일자에 실린 회견을 통해 “중요한 것은 통일이 언제 이뤄지느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북한이 전쟁의 위협을 제거,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통일의 목표를 향해 어떻게 함께 노력해 가느냐는 데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보도된 회견의 일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평가=그는 냉정한 이론가로는 보이지
17일 이른 아침부터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확인 창구를 찾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보내온 방문단 명단에 자기 일가친척 이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 북한이 보내온 방문단 명단에서 북쪽의 가족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예외없이 50년간 참아온 그리운 감정을 쏟아냈다. 빛바랜 사진을 꺼내들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나온 어린이는 아버지가 북에 있는 친지 이름을 확인하는 동안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정을 지었다. 한 노인은 가족확인 창구에서 ‘혹시 내 동생이 아니면 어쩌나’ 걱정하며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이덕훈 leedh@chosun.com /이응종 paryoan@chosun.com /채승우기자 rainman
▶“이회창 총재는 국경일을 집에서 쉬는 날로 아는 모양이다. ”―민주당 김현미(김현미) 부대변인, 한나라당 이 총재가 제헌절 행사에 불참한 것을 두고. ▶“이 정권이 차기 집권에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걸핏하면 북한의 김정일을 동원하나. ”―한나라당 권철현(권철현) 대변인, 남북관계를 차기 대권구도와 연계시키려는 여권의 무책임한 발언들이 난무하고 있다며. ▶“대형 법률법인들은 미국의 경우를 보고 ‘거기서 됐다면 여기서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영국 건강단체 ‘흡연과 건강운동’의 클리브 베이츠 이사, 미국 담배소송 승소에 따라 영
“그것은 통곡이었다. 기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만 개의 바늘과 칼끝이 가슴을 갈기갈기 저미는 아픔이었다. 누가 이들을 그토록 통한(통한)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 1983년 6월말부터 장장 4개월 이상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 대한 조선일보 사설의 첫 대목이다. 그 때의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 너나 없이 밤을 하얗게 새며 이산가족의 극적 상봉과 걷잡지 못하는 오열에 얼마나 가슴아팠던가.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TV와 신문마다 북측이 통보한 이산가족 방문 후보자들에 얽힌 사연들을 봇물
남북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꼈으면 한다.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한달여 동안 고위 당국자들의 ‘입’으로 인해 빚어진 갖가지 크고 작은 평지풍파(평지풍파)와 그에 따른 사회적 혼선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권력측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사려깊게 대처해왔다면 “북한이 남한 차기정권의 대북정책 일관성을 걱정한다더라”는 대통령의 엊그제 발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 같은 것도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이 발언은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처럼 ‘대통령은 차기정권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 얘기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