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측이 북한의 6·29 서해 도발에 대해 우발적인 충돌일 가능성이 높으니 냉정하게 대처하자고 주문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온 2일, 우리 당국자들은 이를 “오보(誤報)”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이 큰 틀에서 전쟁을 위한 작전계획에 따라 도발을 시도한 것은 아닐 것이란 취지로 설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실제로 한·일 정상회담의 발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대목도 ‘냉정한 대응’이었다. 이날 오후 귀국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냉정한 대응을 마치 일본측이 당부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우리
김희상 /미국 RAND연구소 객원연구원·전 국방대 총장서해상에서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정부는 그 망신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언성만 높일 뿐 ‘대북 화해 협력 기조’의 기존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내외 정세와 남북한 관계가 지금처럼 희망적일 때에도 이런 악의적 도발을 자행한다면 앞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문자 그대로 ‘상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또 다시 화해 정책을 위한 성급함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한 냉철하고 진지한 현실 분석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금할 수 없다
양상훈/정치부 차장 jhyang@chosun.com 왼손 손가락이 포탄 파편에 다 날아갔다. 오른 손 하나로 탄창을 갈아끼우고 왼손목으로 총열을 누르면서 사격했다. 자동포에선 두 병사가 방아쇠를 쥔 채 숨져 있었다. 두 팔에 파편이 박힌 채로 실탄을 다 쏴버리고 옆을 보니 전우가 죽어 있었다. 조타실에 있던 부사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불탔다. 쓰러진 정장(艇長)은 아무리 인공호흡을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파편에 오른쪽 다리가 잘린 부장(副長)이 병사들을 지휘했다. 해군 제2함대 고속정 357함의 장병들은 그렇게 싸웠다.그들 중
로마제국 제1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는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지배권을 움켜쥐었다. 그가 로마의 정치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살 때 외할머니 율리아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맡으면서였다. 당시에도 추도사는 정치적 야망을 가진 젊은이에게 명연설을 익히는 기본과목이었다. ▶이보다 400년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27년만에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싸움은 졌지만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은 후세에 고전으로 남는다. “…현재
월드컵 성공 축제가 벌어졌던 어제, 시청 앞에서 광화문으로 가는데 행인이 하는 말이 들렸다. “어, 충무공상 앞에 조기(弔旗)가 걸렸네.” 동상 바로 앞에 갸름한 장방형의 검은 깃발모양의 것이 드리워져 있어 누가 보아도 조기를 연상하게 돼있었다. 서해 무장충돌 사건의 미온적인 대처를 두고 해전의 영웅인 충무공 정신의 증발을 통탄하는 민심의 반응이거나, 우리 해군 함정이 격침당하고 그에 대한 응분의 반격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충무공에 대한 사죄의 민심이려니 했다. 한데 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은 깃발이 아니라 검은 상자들을 여러
북한의 서해 도발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군(軍)의 행동은 허점과 의문투성이다. 초계함 2척을 포함해 첨단장비로 무장한 해군함정 8척이, 수동식 포(砲)에 의존하는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격침시키지 못한 것은 의문을 넘은 분노의 대상이다.이번 서해전투 완패(完敗)의 원인은 현장 잘못보다는, 이들의 손발을 묶은 채 전투에 임하도록 한 김대중 정부와 군 지휘부의 문제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오히려 우리 장병들은 전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아쇠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한쪽 손가락이 잘리자 남은 손만으로 탄창을
현 정권은 북한 정권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완패하고 있다. 나아가 국민마저 그 패배의 길로 오도(誤導)하고 있다. ‘서해 참패’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에서 더욱 그렇다. 무방비 상태에서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받아 국가 최전선이 무너지고, 많은 장병들이 쓰러져 간 후 현 정부는 어떤 자세와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북한측에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게 고작이고, 북한은 이를 일소에 부쳤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햇볕정책의 계속’과 “이런 때일수록 교류협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비군사적 제재 수단마
/ 金正源·세종대 석좌교수·국제정치학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해 3·4위를 가리려는 축제의 아침, 우리 영해에 침범한 북한군에 의해 27명의 대한민국 군인들이 살상되고 고속경비정이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국민들과 한민족의 저력을 칭송하던 세계는 경악했다. 6·29 서해 만행은 냉엄한 정전상태를 간과하고 군을 정치화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햇볕정책으로 한반도 안보를 지킨다는 김대중 정부의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과연 북한의 본심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북한의 서해 도발 공격으로 순국한 장병들의 사연 하나하나는 우리 모두를 슬픔과 분노에 잠기게 만든다. 군인이 아니었다면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축구 응원에 나섰을 이 20대 젊은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참사의 원인은 무엇인가? 3년 전 연평해전 때 북한 해군의 화력을 압도했던 우리 해군이 왜 이렇게 당해야 했던가?김동신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현장 대응 등에서 나타난) 관련자의 잘못이 밝혀지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며 “본인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라고 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부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햇볕정책 덕분”이라고 자랑스럽게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 북한이 기습 선제공격으로 사실상의 전쟁행위를 도발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나마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햇볕정책 덕분”이라고 말할 것인가.실제로 현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사자 유족들의 오열이 진동하는데도 김 대통령이 예정대로 일본으로 떠나고, 금강산 관광선이 한가롭게 북한으로 출항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의도적이고 중대한 공격
지금은 우리 해군이 많이 성장했지만 해군사(史)에는 눈물 없이 읽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건국 초 해군을 창설했지만 함포가 달린 군함이 한 척도 없었다. 1950년 4월 해군장병과 국민이 성금을 모아 3인치 포가 달린 백두산호(PC-701함)를 도입함으로써 해군은 군함다운 군함을 한 척 갖게 됐다. 701함은 6·25 남침 바로 그날 유명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밤 38선 경비를 위해 긴급출동에 나선 701함은 대한해협 공해를 통과 중인 1000t급 괴선박을 추적해 이를 격침시켰다. 이 배에는 600여명의
承仁培 / 문화부차장 jane@chosun.com “내일 아침 금강산 관광선이 떠난다고 하는데 말이 되느냐. 북한이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장병이 죽어가는데 무슨 북한 관광이냐.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가.”“김대중 대통령이 서해 교전에도 불구하고 내일 일본에 축구구경 간다는 게 사실이냐. 도저히 믿기지 않아 전화한다.”북한의 서해도발이 발생한 지난 29일과 이튿날인 30일, 신문사에는 격분한 독자들의 항의전화와 이메일이 종일 빗발쳤다. 온 국민이 월드컵 성공의 흥분과 감격에 들떠있는 상황에서 빚어진 사태이기에
북한의 서해 도발이 있은 지 서너 시간 뒤인 29일 오후,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99년 6월 서해교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꽃게잡이철에 발생한 점을 감안할 때, 의도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합참이 이미 우리 고속정 1척의 조타실이 북한의 제1격에 파괴됐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근거로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라는 점을 공식 발표했고, 이런 발표 사실을 알고 있는 이 당국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 사건을 접근하려 했다.통일부의 분위기는 그 이후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과가 나온 뒤에도 비슷
이상우 /서강대 교수·정치학우선 29일의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20여명의 전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빈다. 또한 북한군을 ‘주적(主敵)’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하는 군 지휘부의 명령에 묶여 동료들의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지켜보면서 발만 굴렀을 해군 장병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위로해 주고 싶다.이번의 참담한 패전의 1차적 책임은 전투 지휘부가 져야 한다. 해군교전 규칙에는 적의 도전에는 즉각 응전하게 되어 있다. 왜 선제공격해 온 적함을 격침시키지 않았는가? 초계정은 무얼 했으며 지원 나간 전투기는 왜
池萬元어제 서해해전에서 발생한 우리의 피해 상황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속절없이 당할 수 있을까 한심하고 걱정된다. 북한 함정은 구식이고 우리 함정은 신형이라 총끝이 목표물에 조준되면 배가 흔들려도 명중이 된다. 이러한 “자이로 조준시스템”은 2001년 12월, 북한 괴선박을 몇 초 이내에 침몰시킨 일본 순시선에도 있었고, 우리 함정에도 장착돼 있다. 남북한 함정이 총을 쏘고 싸우면 북한 함정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일방적으로 당했을까? 2001년 6월 2일부터 2주간 1만4000t급, 7000t급 등의 북한 선
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해온 한국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체포해 장기간 구금 중이거나 재판에 회부하는 강경책을 쓰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인도주의 정신을 외면한 처사다. 이들은 바로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중국 국내법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이들은 위법행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국내법만을 내세워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인권존중의 정신과 일반적 국제관례에 맞는지 중국정부는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에 구금 중인 4명은 모두 종교인들로 탈북자들의 제3국행을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벌어질 북한 주민의 대규모 이동에 대비해야 한다. 아마도 새 정권의 일차적이고 중심적인 과제는 바로 이 같은 북한 주민의 대량탈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 경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도, 또 북한 당국이 결사적으로 막아도, 그리고 중국당국이 강력히 대처해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21세기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엑소더스가 될 것이다. 근자에 탈북상황을 보면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과거의 탈북이 예외없이 북한의 기아와 인간 이하의 조건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라면 요즘은 생
Robert J. Einhorn/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상임고문· 전(前) 국무부 차관보부시 행정부는 선제 군사공격에 더 중요성을 두는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몇몇 위험한 상대들, 특히 테러 집단들을 다룸에 있어 충분히 정당화된다. 그러나 한반도를 포함해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엔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새 전략은 가을까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겠지만,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연설에서 간략히 언급했다. 그는 종래의 억지와 봉쇄 수단이 ‘보이지 않는 테러 그룹
金 信/백범기념사업회 회장오늘 우리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53주기를 맞는다. 백범이 우리 민족의 발전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남긴 이정표는 여전히 후손들의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다.지금 인류는 정보화로 인해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 불릴만큼 가까워지고 국가간의 국경도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촌에는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이 끊임없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민족간의 증오는 인류를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 직면하게 하는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다. 백범이 일찍이 역설했듯이 각 민족이 서로의 자주성과 자존성을 인정하고, 이를
오늘 6월 25일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뜨겁게 상봉하는 ‘현재’이다. 현재의 절반은 과거이며, 다른 절반은 실현 가능한 잠재적 미래라고 했다. 분단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화(散華)해 간 영령들과 국호(國號)의 뜻 그대로인 ‘크고 하나된’ ‘대~한민국’을 외치는 미래세대가 역사의 포옹을 나누는 오늘인 것이다. 반세기 전 공산 적화(赤化)를 맨몸으로 막아냈던 서울과 전국은 지금 진홍빛 축제물결이 분출하고 있다. 이런 반전(反轉)이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우리가 피땀 흘려 구축해 온 국방력과 국민의지라는 전쟁억지력이 밑바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