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鎭雨 /계명대 교수ㆍ철학우리가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는 자신에게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금방 부정적 의미로 탈바꿈하는 것들이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사회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역동적 입장이 진보적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가치와 상태를 유지하려는 정태적 태도가 본래 보수적이다.가부장적 권위주의, 수직적인 군사문화, 폐쇄적 민족주의 등과 같은 비민주적 요소들을 비판하는 태도가 대체로 진보로 이해된다면, 이러한 비민주적 관계는 비판하면서도 이 관계를
金東圭/고려대 교수·북한학 지난달 하순 북한의 농어촌을 1주일간 돌아보고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주민들 거의가 10여년간에 체격이 왜소화돼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인종학적으로 원래 북방 주민들은 남방에 비해 체격이 크고 강인한 골격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은 주민들의 영양실조를 초래했다. 주민들은 지방질이 부족한 초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자연히 평균신장이 줄게 됐던 것이다. 그러자 김정일은 전국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키 크기운동’을 지시했는가 하면 9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종합대
지난 4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는 낯선 손님들을 맞았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피랍된 486명의 납북자 가족 대표 5명이었다.이들은 ‘납북자 가족들의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박경서(朴庚緖) 상임위원 등과 20분간 면담했다.오랜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이들이 전한 인권 침해의 실상은 참혹했다. 연좌제와 감시, 고문 등으로 숨죽인 채 살아온 세월이었다.지난 19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장 최원모씨의 아들 최성구(崔成九·61)씨는 전북의 명문고를 졸업했다. 최씨는 아버지의 납북 이후 어려워진 가정 형
楊相勳/정치부 차장 jhyang@chosun.com 국가에선 국익을 위해 선악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나라 최고 정보기관이 그렇다.미국 CIA, 독일 BND, 프랑스 DGSE,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 등의 정보기관들이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암살·간첩·반란·역선전·선동 등의 공작을 펼쳐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은 제3국에서 적국의 요인을 화학무기로 암살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실패해 음모가 노출됐지만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그들이 공작을
북한이 엊그제 끝난 남북 적십자사회담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도 말라"고 한 것은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망언이다. 납북자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북한은 불과 한달반 전쯤 평양을 방문한 일본 총리에게는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고개 숙이기를 자청해 놓고서, 똑같은 문제로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은 철저히 외면해버린 북한은 더 이상 '민족'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북한의 이처럼 상반된 태도는 현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昌基북한은 요즘도 매일같이 미국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북한이 중대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이 미국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지난달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보면, 미국의 입장과 태도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너무나 동문서답(東問西答)식이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과연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될지 의문스럽고, 10년 전의 ‘북한 핵 위기’가 되풀이될 것 아닌가 걱정된다.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며, 북한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자신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어제 한 강연에서 “북핵(北核) 포기를 위한 압박수단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은 북핵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거꾸로 대북 협상력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는 백해무익한 언동이다. ‘북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상식론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북한과 생산적인 대화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핵 위기’를 체제 생존용 협상카드로 사용할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철저히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경제제재 같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을 지켜주고 있으니 남북이 함께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북한 조평통(祖平統)의 29일 성명은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도대체 북한 지도부가 지금의 핵(核)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에 이런 가당찮은 말을 버젓이 내놓는지는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들의 정세 인식이 터무니없을수록 한반도 위기 상황은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북한의 주장은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과의 이른바 ‘외세 공조’를 버리고 자신들과의 ‘민족 공조’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는
130년 전 신미년의 한미(韓美)전쟁을 유발했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쑥섬 곁에 정박, 통상을 강요했을 때 그 배에 초대되어 승선했던 이가 있다. 지택주(池宅周)라는 당시 16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와 함께 승선하여 양식을 피로받았는데 “냄새가 고약하여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고 세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돛대가 두 그루 서 있고, 삼끈이 산발한 여자머리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했다. 평안중군(中軍=사령관)을 감금하는가 하면 위협발사한 포탄에 군민이 살상당하자 성난 백성들이 투석으로 대항했다. 원래 평양 투석군은 돌 잘
모종린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한과 미국 3국 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흔히 쓰는 비유가 인질극이다. 북한이 남한의 안보를 ‘인질’로 미국으로부터 정?ㅀ姸╂?양보를 얻어내려는 상황이 인질협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사태는 그동안 단지 수사적 표현으로만 사용되어왔던 인질극 비유가 우려할 수준으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핵개발을 실토한 후에도 인질범이 인질과 경찰을 다루듯이 남한과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인질범은 자신의 유일한 무기가 인질과 경찰에 가할 수 있는 무력이기 때문에 호전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레너드 스펙터/비확산연구소 워싱턴 사무소장·전 미국 에너지부 무기통제·비확산 담당 부(副)장관 미국과 동북아시아의 동맹국들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느라 애쓰고 있다. 이달 초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심적 원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새 프로그램은 북한이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다른 한 가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려 했던 프로그램에 병행하는 것이다.다행히도 새 프로그램은 아직 핵폭탄을 만들
지난 3년 동안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포착했으면서도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신건(辛建) 국정원장의 국회답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다. 우선 국정원장이 국가안보와 직결된 북한 핵 관련 첩보를 자의(恣意)로 대통령이 몰라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신 원장은 ‘초보적인 첩보 수준’이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국정원이 국회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정부는 99년 초부터 지금까지 무려 5차례나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개발 움직임을 포착해 이를 추적해왔다고 한다. 이처럼 중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 등 공산사회가 서방측에 장막을 거둘 때에는 그 앞에 앞서 가는 동·식물이 있다. 중국이 일본 앞에 장막을 거둘 때는 팬더가 앞서 갔듯이 북한은 방북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송이를 선물했고, 이번에 남한에 와 산업시찰을 하고 있는 북한 대표단이 가져온 것도 100상자의 송이다. 무슨 저의가 있거나 선물로서가 아니라 장막을 거두는 전주곡으로서 역사에 남는 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문헌에 보면 소나무에는 암(雌)나무와 수(雄)나무가 있는데 송이는 암나무 그늘 아래에서만 돋아난다 했다. 서쪽나라로 갈수록 수소
한·미·일, 그리고 미·중 정상회담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 핵개발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평화적 해결원칙을 확인함으로써 국제 공조체제의 큰 틀과 방향을 마련했다. 특히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여기에 어떤 형태로든 동참의사를 보인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한·미·일 3국이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제의를 일축하고 핵개발 계획의 신속한 폐기와 국제적 의무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한 것은, 북핵(北核)이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할
북한 외무성이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핵(核)포기를 거부한 것은 적반하장의 도발이다. 이번 성명은 북한의 비밀 핵개발 계획이 공개된 이후 나온 북한 정권의 첫 공식 반응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비밀 핵개발에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벌거벗고 뭘 가지고 협상하겠느냐”며 ‘선(先)핵포기 요구를 거부했다.결국 북한은 이번 성명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대형 핵 흥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북한이 우
최보식/사회부 차장대우congchi@chosun.com 작가 이청준(李淸俊)의 소설에는 ‘전짓불’이 곧잘 등장한다. 깜깜한 밤중 지리산 자락의 민가로 들이닥친 불청객 무리. 곤하게 잠든 주인을 발로 툭툭 깨워, 전짓불을 들이대며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다. 전짓불을 쥔 자들은 빨치산일까, 국군 토벌대일까. 잠도 덜 깬 상태에다 어두워 식별할 수 없다. 한 번 잘못 선택하면 곧장 황천(荒天)으로 갈 판이다. 이청준의 ‘전짓불’은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 받는 시대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지난 휴일 소파에서 뒹굴던 기자도 유사한 상황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아예 북한 대변인 역할을 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엊그제 평양 장관급 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이후 정 장관이 한 일은, “북한이 얼마나 핵 문제를 대화로 풀기를 원하는??하는 점을 설득하고 다닌 것이었다. 당사자인 북한은 요지부동인데 우리 통일부 장관이 왜 그토록 ‘북한의 대화의지’를 추측에 바탕해 선전해야 하는지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다.더 기가 막히는 것은 미국이 북한 관련 정보를 입맛대로 ‘요리’해 의도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낸 대목이다. 정 장관은 북한은 대화할 의지가 충분
김정일 정권은 지금 세 가지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인민들에게 세끼 끼니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주체(主體) 논리의 공허함이다. 둘째는 김일성·김정일이 기대려 했던 ‘국제 지원역량’의 소멸이다. 그리고 셋째는 남한 내 우호적인 정권의 몰락추세다.경제파탄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른바 ‘신의주 특구’라는 것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남한도 감히 엄두조차 못 냈을 정도의 조차지(租借地) 할양(割讓)이라는 사실이다. 주체사상, 반(反)제국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권에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북한이 핵(核)을 개발하더라도 대북 지원과 협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보는가. 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보해야 할 쪽은 북한보다는 미국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남북 장관급회담의 공동발표문과 김 대통령이 대선 예비 후보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입장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공동발표문은 북한 핵에 대해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원론적인 한 마디를 언급하고 난 뒤 나머지는 대부분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개성공단 착공 같은 경협
북한 핵(核)과 관련해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물을 것도 많고 들어야 할 것도 많다. 김 대통령이 이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알고 나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알고 난 뒤에도 북한에 현금지원을 계속하라고 했는지, 그리고 이제 북한에 대해 어떻게 할 작정인지, 국민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고 그 속에는 짙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국민들의 의아심은 김 대통령이 22일 “안보와 화해 협력은 어느 하나도 포기해서는 안 될 지상과제”라고 천명한 데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는 내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