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美) 국무장관은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국제사회의) 존경과 협조를 받기를 바란다. 북한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또 “(한국측과)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라이스 장관의 발언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현 시점에서 표면적으론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맥락에선 상호 연결돼 있는 세 가지 쟁점에 대해 명확한 의
/신지은·사회부 ifyouare@chosun.com 몇년 전 일본 여행 중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조총련 계열 재일교포 중학생들의 하교 모습이었다. 일본 거리에서 이질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반듯한 10대 소녀들이 입으니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가 예뻐 보였다.이 치마저고리 교복이 일본 거리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은 작년 5월쯤이다. 일본인 납치 사건, 핵(核)무기 개발 등 북한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칼로 여학생의 저고리를 찢고, 침을 뱉고, 지하철에서 밀어 넘어뜨리고, 욕설을 퍼붓는 사례가 이어졌다. 2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14일 “적을 먼저 규정해야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동맹의 목적과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미국은 동맹이고 북한은 동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10일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한국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응답이다. 정 장관의 발언 자체는 정부가 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이 대목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사령탑(NSC 위원장)이 나서서 반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미국과의
崔弘在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前 고려대 총학생회장80년대는 꿈을 이루었다. ‘반미의 무풍지대 한반도’에 ‘반미의 열풍’이 불게 하자던 시대의 호소는 이제 상식처럼 되었다. 최소한 미국 행정부를 삐딱하게 쳐다보아야 ‘진보나 합리’의 언저리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과거의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학생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던 1980년대 중반을 넘어, 중후반 NL(민족해방)주사파가 학생운동의 주류를 확고히 하자, 반미는 운동의 근본적 목표로 상승하였다. 미국은 19세기부터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작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헨리 하이드 위원장은 10일 한반도 청문회에서 “(한국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신(한국)의 주적(主敵)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나오는 안보문제에 대한 혼란스러운 신호는 우리가 북한과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했다. 하이드 위원장은 또 “한국과 중국 정부의 과도한 대북 지원 정책이 북한의 핵 협박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면서 한·중 양국이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은 상호 공조(共助)라는 말과 수사(修辭)로 포장돼
북한 개성공단에 남한 전기가 들어간다. 지난 4일 시험 송전(送電)이 이루어졌고 다음 주쯤 본격 송전이 시작된다. 1948년 5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쪽에 대한 전기 공급을 끊은 후 57년 만의 남북 전기 연결이다. 남한 기업들이 입주한 개성공단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남한 전기 북송(北送)은 남북관계의 달라진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남북한 분단 당시 북한은 한반도 전체 발전량의 95.6%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북한이 남한에 단전(斷電) 조치를 취함으로써 남한의 산업 전체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그
姜仁仙워싱턴특파원부시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에서 ‘민주주의’는 갑자기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위한 슬로건이 되었으며, 미국과 세계의 장기적인 안보를 위한 사활적 대책이 되었고, 테러와 극단주의의 해독제로까지 등장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 이후 백악관과 국무부, 의회까지 한목소리로 외치는 이 ‘민주주의 확산론’은 2기의 변화를 상징하는 징표다. 9·11 테러가 존재 기반이었던 부시 1기는 ‘테러’로 모든 국제문제를 해석했다. 국가라는 조직의 뒷받침 없이도 엄청난 규모의 파괴력을 행사
언론인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수도분할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을 하면서 “이제는 국민저항밖엔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 것은 한국 우파 진영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에누리없이 반영한 비명이었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빈사상태를 확인한 절망의 자인(自認)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고 싶어하는 회생의 안간힘이기도 하다. 절망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희망을 바랄 수 없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끌어안을 수 없다. 한국 우파 진영은 지금 이 자명한 세상 이치에 뒤늦게서야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당대의 한국 우파 진영
金玄浩논설위원실장북한 김정일은 어떤 조건과 대가가 충족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북한은 아직 분명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내놓지 않고 있다. 협상 목표를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게 해둠으로써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북한이 흔히 구사하는 협상전술이다. 특히 6자회담같이 상대가 많을 때 이런 전술은 상대 진영의 공조를 흔드는 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일리 있다’고 했다가 북한의 핵 보유선언에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북한의 핵협상 목표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
李先敏문화부 차장대우출퇴근길에 지나는 남산순환도로에 한동안 두 개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통일조국을 아이들 품에 안겨주고 싶습니다” “7000만의 통일된 힘으로 전세계에 떵떵거리고 살고 싶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민주노동당 해방촌 분회’가 내건 이 플래카드를 보면서 ‘통일(統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곤 한다.통일은 남녀노소, 이념과 출신 지역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비원(悲願)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1300년 가까이 하나의 나라를 유지하며 살아온 한민족에게 어느날 갑자기 닥친 분단(分斷)은 받아들이
장롄구이(張璉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교수북한 외무성은 2월 10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미 핵 무기를 만들었으며, 6자 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핵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번 선언은 전혀 뜻밖의 것은 아니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했던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인 것은 분명하다.관련 당사국들은 앞으로 회담 재개를 위해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겠지만, 성공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북한이 왜 이런 내용의 선언을, 이런 순간에 내놓았느냐는 두 가지 실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
崔秉默정치부 차장대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5년은 일단 ‘절반의 성공’으로 시작했다.북한 외무성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성명을 발표했다. 끝까지 읽어보면 행간에 북한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 부분에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길게 들어가 있다. ‘폭언’ ‘고립 압살’ ‘강도’ ‘모략’ ‘뻔뻔스러운’ ‘망동’ 등 욕설에 가까운 말들로 꽉 들어차 있다. 이후 북한의 입장이라며, 첫째로 6자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째는 핵무기고를 늘리겠다고 했다. ‘핵 보유’는 이
고문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정권교체 능력에 대해 비관적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존재 이유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집권세력의 좌(左)편향과 정책기조의 상실로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代案)세력인 야당의 부진과 부재(不在)는 자칫 이 나라의 건전한 민주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은 우리 사회에 많은 비판세력을 낳고 있다. 과거 주류세력의 부패 독재 부정에 대한 비판과 반성 위에 참신하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신진 개혁보수 세력이 여기저기서 깃발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뉴 라이
朴勝俊중국전문기자한 바탕의 연극이 또다시 공연중이다. 무대위의 주인공은 중국과 북한이다. 관객은 한국·미국·일본·러시아다. 공연시작을 알리는 팡파레는 평양에서 2월10일 오후 3시에 울렸다. 북한 외무성 성명이다. “우리는 핵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조건을 안 들어주면 무기한 6자 회담에 안간다.” 이 대목부터 두 주인공의 움직임을 찍은 ‘가상(假想) 비디오’를 되돌려보자.2월10일은 평양에서는 8일과 9일의 설날 휴무가 끝난 다음 날이다. 하지만 베이징(北京)은 한창 설날(春節) 휴무중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직
李炳浩전 안기부 차장울산대학교 초빙교수북한의 노동신문은 2월16일자에서 “조선(북한)이 없으면 지구는 있을 수 없다”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인용한 김정일 생일기념 사설을 실었다. 이 말은 김정일이 김일성 생전에 그의 면전에서 했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에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김정일의 배타적 세계관과, 국제사회를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로 보기보다는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는 편협한 국수주의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극단적 사고와 인식이 수사(修辭)로만
편집인지난 14일 북한 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가 열렸던 서강대 행사장 입구에서 국내외 참가자들을 가장 먼저 맞은 사람은 10여명의 운동권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인권대회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합창했다. “전쟁 전주곡, 반북(反北) 모략극” “전쟁명분 위한 인권모략 책동”. 다음 날 오후에는 또 다른 운동권 사람들이 후원사인 조선일보사에 몰려와 “인권이라는 말 뒤에 숨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태를 중단하라”는 시위도 벌였다.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박정희 시절 인권탄압을 좌시한 사람들에게까지 비난을 퍼붓는 그들이 아닌가.
許容範워싱턴 특파원지난 14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과 만났을 때 나눈 ‘비료 50만t’ 얘기는 당면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보여준다.우리 정부의 설명대로, 울포위츠 부장관이 반 장관에게 “북한에 비료 50만t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공식 요청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정부의 말은 맞다. 반 장관은 나중에 비료 50만t 자제 요청이 “사석(私席)에서 한 말”이라고 의미를 낮추었다고 한다.하지만 반 장관 귀국후 워싱턴 외교가에서 듣는 울포위츠와의 대화상황은 그 설명과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1일 평양을 방문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앞으로 유관측(당사국)들의 공동 노력으로 6자회담 조건이 성숙된다면 어느 때든지 회담탁(테이블)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특히 “미국이 믿을 만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하기를 바란다”면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할 것이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고 전했다.종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얘기다. 그러니 사실상 6자회담 복귀를 예고한 것이라는
1987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던 동진호 선원 임국재씨가 “북한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호소한 편지가 공개됐다. 임씨는 2003년 9월, 2004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탈북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임씨는 그후 제3자를 통해 “어떻게든 남한으로 가겠다”는 뜻을 전해온 뒤 연락이 두절됐다.임씨는 납북 후 조국이 자신을 곧 구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렸지만, 15년 세월 동안 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임씨가 스스로 온갖 수단을 써가며 탈출을 시도했던 것은 대답없는 조국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국은 자신을 버리고 자
언론인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두 가지 상반된 모습으로 드러나, 어느 것이 진짜 노 대통령의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번 미국 LA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억지 수단이라고 하는 주장엔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지난 10일 북한이 막상 ‘핵 보유’를 선언하고 나오자 “걱정스러운 일…”이며,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우물우물했다. 열린우리당 역시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집권측의 논리는 도대체 뭔가? 북한은 핵개발을 오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