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제사회의 人道的 식량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면서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 폐쇄와 식량 배급 감독요원들의 북한 철수를 요구했다. 북한의 작년 곡물 생산량은 420여만t으로 자체 소요량에 90만t 이상 부족하다. 그래서 올해 한국 정부로부터 50만t, 중국에서 15만t, WFP에서 10만t을 지원받아 근근이 버티고 있는 처지다.한 톨의 곡식도 아쉬운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고 나선 것은 국제기구의 배급 감독(모니터링)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대신 지원 규모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한국
朴勝俊 중국전문기자“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중국 지도자들과 한반도의 경제와 정치적 미래에 대한 탐구(explore)를 시작했다.” 9월7일자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신경을 건드린다. 라이스와 졸릭이 지난달 초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지도자들과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status quo·현상)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기 때문?굇瀏?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이 졸릭의 말이다. “남·북한 통일에 대한 중국의 걱정(anxiety)을 덜어주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도 한다.
南成旭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비즈니스 방식은 외형적으로 온정주의(paternalism)다. 적자가 나도 지도자가 보전해주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의 균형보다는 계획경제의 원칙 준수에만 신경을 쓴다. 당국은 외국 기업인들에게 해당 사업이 부실화되어도 다른 사업으로 보충해줄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한다. 경제 주체들은 수익 확보보다는 당(黨)의 노선을 추종하는 데 주력하는 인물 중심의 비즈니스를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비정상적인 사업 관행이 만연돼 있다. ‘사람 중심’의
국방부가 3일 현재 68만여명 수준인 전체 軍 병력규모를 2020년까지 50만명으로 줄이는 내용의 ‘국방개혁 입법안’을 내놓았다. 국방부는 2010년까지 현재의 육군 1·3군을 합쳐 지상작전사령부를 새로 만드는 등 육군 구조를 크게 바꾸기로 했다. 국방부는 군 병력을 줄여 남는 돈으로 첨단 최신 무기들을 도입해 전체 戰力이 약해지는 것을 막겠다고 설명하고 있다.‘병력은 줄이고 첨단 무기는 늘려 전력을 키우겠다’는 국방 개혁의 방향에 대해선 정치권과 국방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엔 “북한은 가만 있는데 남한만 줄
최진이 작?ㅐ愍鰥【셈?‘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지 6년. 나는 이제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다. 사람들도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걸 봐도 남과 북 사람들의 개별적 의사소통은 분명 가능하다.그런데 공식 석상에서 남·북의 소통은 내가 보기에 무척이나 서투르다. 북에 다녀온 남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이산가족 만남 때마다 그랬고 작가들 만남 때도 그랬다. “김정일 장군님의 배려로 잘 살고 있고, 장군님께서 이 상봉을 마련해 주셨고…”라는 말이 도무지 끔찍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말의 뜻이
북한이 하루 1000~1100명인 금강산관광객 숫자를 9월 1일부터 600명으로 줄이라고 현대아산에 통보했다. 북한은 현대그룹이 지난 16년 동안 對北대북 사업 창구 역할을 해 온 김윤규씨를 현대아산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이런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현대아산은 우선 9월 1일부터 15일 사이에 당일 또는 1박2일 일정으로 금강산에 가려고 예약했던 8000여명의 관광을 취소했다. 현대아산은 관광객 한 사람에 70달러씩 계산해 하루에 1만5000달러 정도를 북한 당국에 내고 있다. 북한이 관광 날짜를 불과
鮮于鉦도쿄특파원8월이 지나면서 일본에서 ‘종전(終戰) 60년 무드’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번 무드는 전반적으로 일본이 겪은 ‘전쟁의 참상(慘狀)’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닌가 싶다.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을 시작으로 사이판, 오키나와 결전, 그리고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原爆)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 NHK의 원폭 관련 보도는 시청자들이 눈을 찌푸릴 정도로 여과 없이 당시 참상을 흘려보냈다.상당수 한국 언론은 이런 흐름을 ‘가해(加害) 기억은 사라지고 피해(被害) 기억만 남은 일본’을 증명하는 사례로 보도했다. 교과서
洪官憙 안보전략연구소장·정치학 박사북한이 지난번 제4차 6자회담 중 돌연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제기하고,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항구적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들어 이에 적극 호응함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현재의 한반도 안보구조는 1953년의 정전(停戰) 체제에 기반한 것으로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향후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외국군 주둔 문제를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가 가장 큰
金文洙 한나라당 국회의원1951년 경북 영천 출생. 서울大 경영학과 졸업. 민청학련 사건 관련 제적.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全勞協 지도위원, 민중당 노동위원장,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同 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 역임.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해 북한 인권침해 행위를 감시하자『人權에는 국경이 없다』 2004년 10월4일 美 하원에서는 「북한人權法」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몇 차례의 의회청문회를 거쳐 2003년 11월 상·하 원에 각각 「북한자유법안」이 제출된 지 불과 10개월여 만이었다. 2004년 7월21일 하원의 첫 의결,
1930년 당시 극단 중에 일류멤버를 거느렸던 연극사(硏劇舍)가 개성에 천막을 쳤지만 궂은비가 계속되고 손님은 들지 않아 여관에서도 더 이상 공밥 줄 수 없다고 밥상을 내지 않던 날 무대감독인 왕평과 작곡가 전수린이 개성 고궁터인 만월대(滿月臺) 구경을 했다. 벌레 소리만 황량한 황성 옛터와 나라 잃은 민족 애수가 겹치고 거기에 손님 없는 허탈이 겹쳐 악상이 떠올랐다. 전수린이 바이올린을 들어 즉흥적으로 작곡을 하고 왕평이 가사를 붙인 것이 ‘황성옛터’요 이 노래를 부른 이애리수는 민족가수로 떴으며 민족 공감대를 타고 밭 매는 아낙
金聖昊 연세대 교수·정치사상광복 60주년을 맞아 실시된 1980년대에 출생한 신세대(16~25세)의 민족 의식에 대한 조사를 접하고 새삼 몇 해 전 일을 떠올린다.2002년 갓 귀국한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문화충격은 친구들이 마련해준 환영식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건배의 함성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한 은행 광고의 카피임을 후에 알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놀란 마음이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물질적 부(富)에 대한 그 벌거벗은 욕망이 사뭇 낯설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불과 몇 달 뒤 전국을 붉게 뒤덮은“대
[김구라의 '쿨 아이']KBS2FM ‘가요광장’ 진행자‘영원한 오빠’ 조용필이 북한에 갔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인기 스타였던 조용필씨, 하지만 그 아시아에서 딱 한 곳, ‘못찾겠다 꾀꼬리’였던 나라가 있으니 바로 북한이었는데, 이제서야 그 무대에 섰다.이번 공연에 대한 관심은 남쪽에서도 대단했던지, 드라마 전쟁 시간인 화요일 밤 10시에 공연 실황이 시청률 1위였다고 한다. (SBS도 이번 공연의 승리자다. 조용필 씨와 묻어 가서 북한의 높은 분들도 만나고 시청률도 잡았으니…) 후일담을 들어보니, 남쪽 관객들과는 너무 다른, 조
조용필의 평양 무대―청중은 통제된 반응으로부터 너도 나도 모르게 서서히 풀려나가 감동의 회오리에 몰아치는 과정이 그동안 억눌려 있던 민족 원형질을 터뜨리는 것 같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중국정사인 「이십오사(二十五史)」의 많은 기록들에서 고대 한국인의 공통항 하나만을 고르라면, 어울리면 노래하고 춤춘다는 낙천기질을 들 수 있다. 얼마나 가무(歌舞)를 즐겼기로 또 그것이 얼마나 이색적으로 보였기로 가장 두드러진 고대 한국인의 기질로 적어 남겼을까 싶다. 이 가무가 삼국시대의 동맹(東盟) 영고(迎鼓)등 신(神)맞이 종교행사와 맥락이
진성호인터넷뉴스부장영화를 봤다. ‘웰컴 투 동막골’.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고, 진한 감동도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초등학생인 딸이 말했다. “미국, 참 나쁜 나라네.” 아내가 말했다. “반미 영화.”신문 영화평이 좋았던 이 작품 배경은 한국전쟁. 남·북한 군인과 미군이 동막골이란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눈다. 북한군은 패잔병이고, 미군은 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해 동막골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그려진다. 남한 병사 1명은, 그러나 사정이 좀 다르다. 양민을 학살하려는 상부 방침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탈영한 것으로 암시된다
柳根一언론인‘8·15 행사’ 때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총리공관에 초청한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그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군사독재가 있는 한 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기야 ‘평화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으스스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 대한 오늘의 역풍(逆風)에는 또 그만한 지나침이 없는가? 지난 ‘8·15 행사’ 때 드러난 그런 역(逆)의 지나침은, 그것이 ‘대한민국 57년사’를, 그것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한껏 처량하게 먹칠했다는 사실에서 가장
李在敎 변호사·법학박사지난 광복절 전후에 있었던 ‘8.15 민족대축전’을 지켜보면서 새삼 세상 많이 변했다고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북한의 인공기를 보는 것도 금기였다. 남·북한의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TV는 한사코 인공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엔 인공기를 보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총리가 인공기를 소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시민단체는 권력자로 변했다. 한총련 등 축전 주최측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는 연세대를 숙소로 결정한
이번 ‘8ㆍ15 민족대축전’ 기간에 나타난 서울 속의 북한은 휴전선 너머의 실제 북한과는 달랐다. 북한 대표단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했으며 청와대를 예방했다. 이들은 현충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 방문한 것”이라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실을 찾아가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안부를 전하고 “완쾌돼서 꼭 평양에 오시라”고 했다. 남북 이산가족 화면 상봉에서 한 북한 가족은 “어느 놈이 우리나라를 갈라놓고 한 집안을 갈라놓았느냐”면서 흐느꼈다. 이 사람이 말하는 ‘어느 놈’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남·북관계의 ‘정상화’ ‘전면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몸짓’… 이번 8·15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의 행보를 두고 언론에 등장한 표현이다. 6·25전쟁 전사자들뿐만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등 남한의 반북(反北) 정치지도자들이 묻힌 현충원을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하는 등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우리 사회는 놀람과 감동으로 화답하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 넉넉하게 남·북 화합의 장면을 즐기게 되었다.이 상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영어에 관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ED) 탄생의 뒤편에는 한 사람의 정신병자가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군의관이었던 윌리엄 마이너였다. 마이너는 탈영병의 얼굴을 뜨거운 인두로 지지라는 군법회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가 정신이상자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 런던에 갔던 그는 발작 상태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쏴 죽여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마이너가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끼어들게 된 것은 ‘영어로 출판된 모든 문서’들을 검토해 이 사전에 수록될 예문을 찾아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서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1980년대에 출생한 신세대(16~25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민족의식 조사에서 북한에 대한 호감도는 ‘좋다’가 62.9%, ‘싫다’가 33.7%였다. 작년 12월 갤럽조사에서 50대 이상 旣成세대가 북한에 대해 ‘좋다’ 16%, ‘싫다’ 55%의 반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북한을 ‘안전을 위협하는 적대적 대상’으로 보는 비율은 기성세대는 21.6%인 반면, 신세대는 6.6%에 불과했다.이번 조사를 기획한 정치학자들은 “신세대는 50대 이상 기성세대처럼 북한을 ‘敵’으로 보고 있지도 않고,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