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건국대 교수(정치학) 독일 역사는 분열의 역사다. 독일은 187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해 제2차 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74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통일 상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분열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패전 후 동·서독으로 나뉘었다가 1990년 다시 통일을 이룬 지 만 15년이 지났다.현재 통일된 독일은 미완성인 '분단상태의 통일'(getrennt vereint)에 머물고 있다. 즉 17% 정도로까지 차이가 좁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득격차에 따른 동독출신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통일비용
독일의 소설가 리온 포이히트방거는 1937년 소련을 둘러본 뒤 기행문을 남겼다. 극우 나치정권에 몸서리쳤던 탓일까. 그 반대편으로 인식됐던 공산체제에 포이히트방거는 일방적 찬사를 보냈다. “소련 인민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인민 전체가 만족하며 산다.” 그러나 1937년은 스탈린의 ‘공포 정???시작된 바로 그 해다. 비밀경찰은 마구잡이로 반동분자 낙인을 찍어 총살형을 집행했다. 소련 주민들은 “체제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생존을 위해 쓴 가면(假面)을 포이히트방거는 ‘행복한 표정’이라고 읽은
판사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요즘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만나는 판사들마다 ‘강정구 파동’를 화제로 올린다. 법관들의 얘기를 요약하면, 정권에 의해 무시로 행해지는 사법권 침해와 사법부 무시 행태가 도(度)를 넘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무장관의 강 교수 불구속 지휘는 ‘구속 여부는 법원의 고유권한’이란 원칙을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헌법 제12조는 검사가 청구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죄지은 사람을 구속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형사소송법에 명시하고 있다. 천정배 장관은 지난 12일 사상 초유의 지휘권을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난다. 지난 반세기를 존속했던 한반도 남쪽의 판을 뒤엎으려는 음험한 프로젝트-그것을 가름할 결전(決戰)이 다가오고 있다. ‘강정구 현상’ ‘천정배 현상’은 바로 그 결전에 이르기까지의 한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프로젝트의 전체상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지, 그때그때의 국지전(局地戰)에만 정신 팔려서는 안 된다.노무현 정권의 출현은 한반도 수구좌파에게는 57년 만에 굴러온 ‘대망의 기회’였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하는 것이 그들의 놀라움이요, 감격(?)이었으리라. 오랜 세월 숙
동국대 교무위원회가 17일 성명을 내고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정치적, 사회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학교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빠졌다”면서 “동국대생의 사회 진출을 막아 버리겠다거나 학생을 보내지 않겠다는 항의가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교수들은 “(강 교수 발언이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킨 결과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향후 당국의 법적 처리 결과에 따른 조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대학을 보호할 힘을 가진 각계각층이 대승적 사고를 통해 지나친 갈등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대학으로서는 “한국의
姜薰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시변) 공동대표강정구 교수 문제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지금은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중 누가 옳은지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언론 등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나아가 이 상태를 며칠간 방치하면 국가의 근간인 검찰 조직이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을 염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사태는 수습되어야 하고, 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정부·여당의 과욕에서 비롯됐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여당이
申志鎬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말했다.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와 동류로 취급하는 것을 참을 수 없으며, 북한 스스로도 감히 공산주의를 표방한다는 사실을 좌시할 수 없다.”(프랑스 공산당기관지 ‘뤼마니테’, 2000년 5월 17일)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사회주의 기본원리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탈 사회주의’ 국가다. 그렇다 보니 스탈린주의의 변형, 루마니아 술탄체제와 유사, 유교공산주의, 유격대 국가 등 북한 체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동국대학 교수 강정구씨를 불구속 수사토록 검찰총장에 대해 指揮權을 발동한 것은 강씨를 구속하는 게 옳은가 불구속하는 게 옳은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첫째, 법무부장관이 강정구라는 개인의 구속·불구속 문제에 대해 검찰청법의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것이 이 법의 입법 취지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법무부장관이 대통령 비서실장, 집권당 당의장 등의 비호를 받고 있는 특정 혐의자를 구속하지 말라고 검찰에 지시한 것이 과연 정당한 지휘권 발동인가 아니면 부당한 정치 압력인가 하는 것이다. 셋
지난 7월 좌파 통일운동 단체인 범민련이 주관했던 금강산 통일기행 참가자 속에 국가정보원이 訪北 승인을 반대했던 보안관찰처분 대상자 5명이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6·25 전쟁 때 빨치산 활동을 했던 비전향 장기수 출신 김영승씨와 간첩활동을 했던 4명이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6·25 때 노동당에 입당한 후 20여 회 민가에 침입하여 식량을 강취하고 군부대를 습격하여 국군 5명을 살해한 자’로 기록돼 있다. 통일부는 이들의 방북 허용 이유에 대해 “人權 측면에서 금강산 관광을 제한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
강정구 교수와 함께 동국대에 재직 중인 장시기 교수(영문학)가 “김일성은 가장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들 중 하나”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이 속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 나라들의 독립에 가장 걸림돌 역할을 한 나라는 미국”이라면서 “미국과의 싸움에서 아주 당당했던 김일성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존경스러운 동양의 지도자였다”고 했다. 그는 “내가 김일성과 같은 코리안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곳 아프리카인들에게 흡족한 대접을 받을 때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고 했다.
북한의 공식적인 조선노동당 창립일은 1945년 10월 10일이다. 60년 전의 그날 평양에서는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13일까지 계속됐는데 일본의 북한 연구가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13일 하루만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대회에서 현 조선노동당의 모체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결성된다. 대회는 ‘조선 무산계급의 영수 박헌영 동지 만세’를 부르고 북조선분국이 서울 당 중앙의 직영 직속기관이라고 규정했으나 이는 수사(修辭)였고 실제로는 새로운 당 중앙의 탄생이었다. 분국 설치는 1
역사에 대한 무식과 왜곡, 젊은 세대의 정신적 무장해제 시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법무장관이 개별 형사사건에까지 직접 수사 지휘를 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날 당사자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한 인터넷 신문에 또 글을 올려 그 동안 자신의 발언에 대한 장황한 해명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글 첫머리에서 그는 20년전 박사 논문을 쓰던 때을 회고하며 "해방인 줄 알았더니 또 다시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외세가 우리 역사를 난도질 한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더구나 이런 오욕의 역사를 오욕이 아니라 자랑으로 여기도록 교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의 주인공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의 論難이 계속되고 있다. 여당은 강씨의 주장이 학문적 토론의 대상이지 사법처리의 대상은 아니라고 감싸고 있다. 더욱이 청와대 비서실장조차 강씨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나서고 있어, 청와대가 ‘신중한 수사’를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청와대가 말하는 ‘신중한 수사’의 의미는 ‘구속 不可’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강씨는 지난달 3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토론회에서 “韓美동맹은 한국사회 主流의 心性을 ‘崇美
柳吉在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지금부터 60년 전 평양에선 ‘조선공산당 서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조선공산당 북부조선 분국(分局)’의 수립을 결정하였다. 비록 서울에 조선공산당 중앙이 존재하지만 남한에 미군정이 성립되어 활동에 제약이 있으므로 평양에 그 분국을 두기로 한 것이었다. 말로는 ‘분국’이지만 오늘날 북한이 이 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한 날인 10월 10일을 조선노동당 창건일로 삼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그것은 사실상의 ‘당 중앙’이었음을 의미한다.당시의 조선노동당은 비록 조직적 기반은 미약했지
중국이 지난 8월 29일 산둥성 옌타이(煙臺)의 한국국제학교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했던 탈북자 7명을 한 달 후인 9월 29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톈진(天津)의 한국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쫓겨난 9명의 행방도 여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국학교에 들어가기 전 찍은 동영상에서 ‘우리는 탈북자들입니다. 자유와 삶을 찾아 한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한국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구원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애절한 말을 남겨 놓았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탈북자 62명을 체포해
李相敦 중앙대 교수·법학1980년대 대학가에는 이른바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으로 팔던 서점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운동권 이념서적을 주로 팔던 서점들이었다. 훗날 ‘386 세력’이 된 당시의 대학생들은 학과 공부는 제쳐놓고 무리를 이뤄 이런 책들을 읽고 밤새 토론했다. 노무현 정권의 주축세력이 된 이들의 정신세계는 이런 책들이 그려낸 것이다. 오늘날 대학가에서 그런 서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 들어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짐에 따라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한때 사라진 데다가, 우리 사회도 민주화의 길을
황대진·사회부 djhwang@chosun.com“공안부, 좀 잘하지 그랬어.” 지난 7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난 뒤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은 고생한 검찰 간부들을 격려하면서 유독 공안부에만 ‘한마디’ 했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때문이었다.한나라당 주성영·장윤석 의원 등이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이 200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강 교수를 기소하고도 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이유를 밝히라”고 추궁하자 김 총장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김 총장이 공안부장을 돌아보자 공안부장은 뒤쪽에 배석한 간부들에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9일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시민단체 간의 충돌이었는데 일부 언론과 보수 세력이 의도적으로 논란을 증폭시켰다. 韓·美 동맹을 걱정한다는 美名 아래 한·미 간 불신과 균열을 부추기는 일부 언론과 세력이 있다”고 했다.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여당 대표인 문 의장이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동상 철거 자체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일부 언론과 보수세력의 태도’를 문제삼는 말이다. 문 의장뿐 아니라, 여당 지도부 누구도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한 적이
북한이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사업을 제의해 온 데 대해 롯데관광은 “국제적 비즈니스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성관광은 지난 2000년 북한이 현대에 30년간 독점사업권을 약속한 7대 사업 중 ‘관광명승지 종합개발’에 해당하며, 지난 7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정은 현대 그룹회장을 만나 “현대가 백두산과 개성 관광을 맡아달라”고 제의했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통일부에서 시범사업 승인을 받아 지난 8월 개성 시범관광을 실시했다.그런 사정을 남쪽 정부와 국민이 훤히 알고 있는데도 북
통일부 이봉조 차관은 6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남북협력기금을 流用유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현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현대는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대는 “김씨가 남북협력기금을 직접 유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면서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을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그러나 이 문제는 통일부가 이렇게 현대를 윽박지르고, 정부 지원에 대북사업의 운명을 걸어야 할 처지인 현대가 바짝 몸을 엎드렸다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통일부는 김씨가 유용한 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