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78년 납북됐던 김영남씨 등 고교생 5명이 南派남파간첩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1997년 檢擧검거 간첩과 2000년 이후 탈북자들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고 국가정보원장이 27일 국회에서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납북자 부모들은 30년 전 잃어버린 자식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報道陣보도진에게서 전해 듣고 “정부가 어떻게 여태 알려주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일본에서 북한에 강제 납치됐다 김영남씨와 결혼한 것으로 확인된
“법은 이성에 기초하는 것이고, 나와 내 신하들도 판사들만큼 이성을 갖고 있소.”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는 모든 판사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왕이 원한다면 웨스트민스터홀에 앉아서 어떤 법원의 어떤 사건도 판사가 아닌 어떤 신하를 통해서라도 재판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이에 대해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법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코크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폐하는 영국의 법과 신민들의 생명, 재산에 관계되는 권리 주장에 관하여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 주장들은 자연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적 이성을 오랫동
평양에서 24일 끝난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우리 대표단이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중 訪北방북 의사를 전달한 데 대해 北側북측은 “기본적으로 의견을 같이 했다”고 우리 수석 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밝혔다. 이 장관은 “구체적인 날짜와 일정, 방북단 규모, 열차 이용 여부 및 절차에 대해선 5월 중 실무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장관 말처럼 일이 진행된다면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지 꼭 6년 만에 다시 북한 땅을 밟고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으로선
대북(對北)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과 ‘퍼주기’로 일관했다.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북한과의 교류, 김정일과의 회담에 설정한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그것의 실현에 전력 투구했다. 그 덕에 DJ는 6·15회담을 성취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국내에서는 나라를 갈등으로 몰아간 결과를 가져 왔다. 그는 철저히 업적주의에 매달렸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사태를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쇼 같은 것을 연출하려 했다. 평양 방문과 6·15 선언이 그 대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북한과의 실질적 개선 즉 정치적 화
庾龍源군사전문기자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166만평 부지에 자리잡은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는 1961년 한국에서 헬리콥터 사고로 순직한 미군 벤자민 K 험프리 준위의 이름을 딴 것이다.항공 수송, 통신, 의무, 헌병 등 지원부대와 정보수집 부대가 주로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주력 전투부대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캠프 험프리가 최근 미군기지 이전 반대 세력과 정부 당국의 충돌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군 안팎에선 평택 미군기지 이전계획이 일부 주민과 ‘평택 미군기지 확정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의 강력한
신언상 통일부 차관이 며칠 전 공개 강연에서 “세계 각국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엄청 떠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뭐가 있느냐”며 “피켓 들고, 데모하고, 시위하고, 성명서 낭독한다고 인권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우리도 100만장의 성명서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 정권의 本心본심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래야만 이 정권 下하에서 차관 자리라도 부지하며 밥을 벌어 먹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쳤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야박하고 몰상식한 言辭언사를 弄농하는 통일부 차관의 얼마 전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대한민국 국무총리 지명자 인사청문회가 열린 제3회의실 내부는 마치 일본 총리의 청문회장이라도 된 듯 일본 언론들로 북적댔다. NHK, 후지TV, NTV, TBS, TV아사히 등 거의 모든 방송사와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등 메이저 신문 특파원들이 녹음기와 펜을 들이댔다. 이날 청문회 참석자는 납북자 김영남씨 가족. 김씨는 북한으로 피랍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으로 최근 확인된 인물이다.NHK 취재팀 관계자는 “납치된 일본인 메구미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라도 있을까 기대하고 다들 몰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7일 국회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拉北者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에 과감한 경제적 지원방식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우리의 목표는 납북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모셔오는 것이다. 국가 責務책무라는 차원에서 필요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다.북한은 여태까지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정부 역시 이런 북한 눈치를 보느라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꺼려 왔다. 그랬던 정부의 主務주무부처 장관이 납북자 문제를 풀겠다고 말했으니 이것도 진전이라면 진전인 셈이다.엄격히 따지자면 납북자
姜哲煥 정치부 기자·1992년 탈북11일 밤 80세를 일기로 작고한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소식을 북한 주민들이 안다면 남한 사람들 못지않게 애도할 것이다. 신 감독은 북한 인민에게도 지울 수 없는 추억과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197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홍콩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후 신 감독은 부인 최은희 여사와 함께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북한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였다. 신 감독이 만든 ‘철길을 따라 천만리’라는 영화에서, 우산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북한이 1978년 납치한 고교생 김영남씨는 南派 간첩을 길러내는 교관이 됐고, 당시 김씨를 납치했던 간첩 김광현씨는 1980년 붙잡힌 뒤 轉向해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뒤바뀐 두 사람의 팔자와 그들이 사는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떤 소설보다 기막히다. 이 人生 流轉의 原因은 남북 분단체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때도 없이 공작선을 띄워 같은 동포건 외국 국민이건 가리지 않고 납치해온 북한이란 집단이다. 김영남씨와 김광현씨의 뒤바뀐 삶은 그런 북한의 범죄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미국 하원은 이달 말 김영남씨의 아내였던
북한에 납치됐다 사망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씨의 배우자가 남한 출신의 납북자인 김영남씨로 확실시된다는 일본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1978년 8월 5일 군산 앞 선유도에서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북되어 생사를 모르던 김영남씨가 일본측 조사과정을 통해 메구미씨의 딸인 김혜경의 생부로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된 셈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이후 지난 4년 동안 납북문제로 뜨겁게 달아 있던 일본으로서는 또 하나의 성과이며 그 불씨가 이제 현해탄 건너 한반도까지 전해진 셈이다. 김씨를 납치했던 북의 남파
남·북한과 미·중·일·러의 6자회담 대표가 모두 참석한 동북아시아협력대화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내지 못했다. 사실은 한반도 문제 논의의 中心 테이블이 6자회담에서 미국의 對北 직접 압박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에 이어 8일부터 미국인과 미국 관련 기업·단체들이 북한선박을 빌리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미국도 6자회담에 별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가 북한이 납치한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가 작년 6월 韓美한미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회담에서 “북한은 100달러 위조지폐를 잘 만들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낸다”고 말했다고 하는 등 부시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정상회담 내용을 작년 11월에도 두 차례 보도했었다.얼마 전 퇴임한 리언 러포트 前전 駐韓주한미군 사령관은 在任재임 중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 “한국 정부나 관련 인사들이 한미同盟동맹 협상 현안을 여러 차례 언론에 흘린 것이다. 作戰計劃작전계
남·북한과 미·중·일·러의 6자회담 대표가 모두 참석한 동북아시아협력대화는 6자회담의 불씨를 살려내지 못했다. 사실은 한반도 문제 논의의 中心중심 테이블이 6자회담에서 미국의 對北대북 직접 압박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에 이어 8일부터 미국인과 미국 관련 기업·단체들이 북한선박을 빌리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미국도 6자회담에 별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가 북한이 납치한 요코다 메구미의
"대한민국에는 정부가 없다" 납북피해자에게 세금걷는 정부는 약탈자일 뿐정부가 될 것인가 약탈자로 남을 것인가군산 앞바다에는 섬들이 많습니다. 이름하여 고군산군도라고 하지요. 지금은 간척이 많이 진척되어 지명으로만 남아 있는 섬이 여럿 있고, 새만금 둑까지 완성되고 나면 그 나마의 섬도 부족해져서 군도라고 하기엔 좀 어색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고군산군도에서 으뜸으로 아름다운 섬은 선유도입니다. 뭍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황해라고는 하나 사방이 탁 트인 푸른 바다입니다. 새만금 둑도 보이지 않는 바다 가운데에 그는 있습니
柳浩烈 고려대교수·북한학북한에 납치됐다 사망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씨의 배우자가 남한 출신의 납북자인 김영남씨로 확실시된다는 일본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1978년 8월 5일 군산 앞 선유도에서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북되어 생사를 모르던 김영남씨가 일본측 조사과정을 통해 메구미씨의 딸인 김혜경의 생부로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된 셈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 이후 지난 4년 동안 납북문제로 뜨겁게 달아 있던 일본으로서는 또 하나의 성과이며 그 불씨가 이제 현해탄 건너 한반도까지 전해진 셈이다. 김씨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라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밝혀냈다. 그는 고등학교 학생이던 1978년 전북 선유도에서 실종된 김영남씨다.일본 정부가 이를 확인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1977년 니가타 현에서 실종된 요코다가 북한 정보원에 의해 납치됐다는 정보가 있자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그것이 사실임을 實吐실토받았다. 일본 정부의 自國民자국민에 대한 확인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4년에 사망했다는 요코다가 생전에 납북 한국인과 결혼해 살았다는 소문이 있자 200
김창기 · 편집부국장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외 정책이 초기와는 달리 안정되어 가고 국익에 입각한 현실주의 노선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이라크 파병을 관철했고, 미군기지 재배치 협상도 원만히 매듭지었으며, 최근에는 내년 봄까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발표도 했다.이런 일련의 정책 노선은 역설적이게도 야당과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여당 및 노 대통령 지지층 안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확실히, 과거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떻습니까”라던 노 대통령에 비하면 지금은 달
▲ 류근일/ 언론인 TV 뉴스에서 라디오의 무슨 대담 프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양극화’ 떠벌리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지금의 한국사회가 볼셰비키 혁명 직전의 러시아처럼 느껴진다. 한 줌도 안 되는 황실, 귀족, 부농, 자본가들이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고혈을 쥐어짜 맹꽁이 같은 뱃살을 키우고 있는 사회…. 그 제정(帝政) 러시아가 바로 오늘의 한국적 양극화의 무대인 양 암시하고 있다.이 도식적 양극화 논리를 가지고 구(舊)좌파 권력진영은 참으로 투박하기 짝이 없는 관념적 대치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좋은 학교, 강남
뉴라이트가 지향하는 사회는 ‘작은 정부, 큰 시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사회’가 동행(同行)해야 비로소 선진 한국의 기본 골격이 갖춰진다. 뉴라이트는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배격한다. 시장을 신뢰하지만 그것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의 맹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이와 관련, 뉴라이트는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인류에게 더 큰 재앙을 안겨 줬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시장의 맹점을 정부가 모두 보완해야 한다는 사고를 경계한다. 예컨대, 국가권력의 강제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