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지난 16일 발언은 여러가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발언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정책결정자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고 강경한지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일·북 정상회담과 최근 남북관계 진전 등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되는 대화무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관심은 초지일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쪽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마디로 미국이 보는 북한문제의 핵심은 대량살상무기와 북한의 위협 제거인 것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17일 평양에 도착한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실무적이고 냉정한 태도다. 그의 말과 몸짓은 절제돼 있었고, 표정에서는 감정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처음 대면했을 때 한손으로 가벼운 악수만 건넸을 뿐이었고, 점심식사도 따로 했을 정도다.이같은 태도는 이번 평양행을 일·북 간 중요 현안에 대한 정상 간 담판의 기회로 삼을 뿐, 불필요한 정치행사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일본측 보도에 따르면, 이런 ‘냉정한 협상’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서 반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르겠다. 2년 전 평양에서 김정일과 얼굴을 맞대고 한 이야기를 정작 상대방은 “80%만 알아들었다”고 뒤늦게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김정일은 “남조선말에는 영어단어가 너무 많이 섞여 있다”고 불평해, 김 대통령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게 영어 때문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작년 7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을 밀착 수행했던 러시아 고위관리가 최근 펴낸 책에서 밝힌 대목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황원탁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통역이 필요치 않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우리가 하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혁명인지, 아니면 개혁인지를 생각하게 된다.한 좌파 지식인은 얼마 전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마지막 보루인 조선일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냈다. “이승복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는 작문이 아니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는 일부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서해교전 때는 한반도의 분쟁은 남한이나 북한의 어느 한쪽이 아니라 제3자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어 온 통념과 양식에 대한 도전이
현 정부는 간첩을 못 잡는 것인가, 안 잡는 것인가. 그나마 적발된 간첩사건마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쉬쉬해 온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은 아닌가.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간첩행위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정부 스스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사태다.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검거된 간첩은 모두 34명에 불과하다(한나라당 강창성 의원 공개 자료). 1년 평균 6~7명꼴이며, 그나마 갈수록 줄어들어 작년에는 5명, 올해엔 1명뿐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모두
북한이 금강산 관광비 지급을 한국 정부가 보증할 것을 요구하면서 관련 회담을 결렬시켜버린 것은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그나마 지금 금강산 관광사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관광경비를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은 이것도 모자라 앞으로 현대가 지급해야 할 5억6000여만달러를 아예 한국 정부가 몽땅 책임지라는 것이다.북한의 이같은 억지는 현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 정부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의 사업이며, 따라서 정경(政經)분리와 시장경제 원칙을 철
金正源/ 세종대 석좌교수·국제정치학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유엔 연설을 통해 ‘문명’ 대 ‘폭군’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라크 공격을 밀어붙이고 있다. 1990년 걸프전 때처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한다는 반듯한 명분도 없고 국내외의 반대여론도 거세지만, ‘유엔이 못하면 미국이 하겠다’는 자세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은 왜 그런 반대와 비난을 감수하면서 ‘가능성’과 ‘의혹’만을 갖고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9·11테러가 일어나기 불과 두 달 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폭탄을 적재한 배나 항공
李美一남북적십자회담에서 6·25 때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생사확인을 하자고 북한이 먼저 제의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올해 팔순을 맞은 어머니는 만세를 부르셨다. 북한 정치부 요원이라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납치돼 간 후 50년을 한결같이 기다리며 집을 팔지 않고 지켜오신 어머니다. 전쟁 때 납치된 아들을 기다리는 88세 가족회원 할머니는 편찮아서 그동안 식사를 통 못하시다가 이 소식을 듣고 힘을 내야겠다며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자식된 사람으로서는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고 유해라도 송환해 오고 싶은 마음이지만, 남
그저께 서울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은 오랜만에 남북한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한데 어울리는 모습에서 흐뭇한 감회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이런 행사들을 갖는 데 있어 개최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바람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원칙과 가치마저 이랬다저랬다 흐리멍텅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점에서 이번 남북축구경기때 주최측이 한때나마 관중들이 태극기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만류하고 심지어 ‘압수’까지 했다가 다시 허용한 ‘왔다 갔다’ 해프닝은 『무슨 이런 원칙없는 나라가 있나?』하는
어제 끝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6ㆍ25전쟁 중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생사와 주소를 확인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전쟁의 상흔을 씻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북측이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얼마나 성의있는 자세로 나올지는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6ㆍ25 행방불명자 문제가 남북회담에서 본격적인 의제로 올랐고, 양측이 그 해결노력까지 명시적으로 천명한 것 자체가 적잖은 진전이라고 할만하다. 정부는 그동안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키는 우회적 방법으로 문
李 相 禹태풍이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지나간 지도 열흘이 넘었다. 하룻밤 사이에 집도 논밭도 가게도 가재도구도 모두 잃고 한데 나앉은 백성이 수십만이라 한다. 도로·철도·전기·전화도 끊기고 둑도 산도 허물어져 내렸다. 공장·비닐하우스·축사도 물에 잠겨 폐허가 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쯤 되면 온 국민이 직·간접으로 피해를 본 전국적 재해다.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수재의연금을 보태고 일손 돕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때가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비상사
오늘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태극기를 일절 볼 수 없게 됐다.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와 인공기(人共旗) 대신 한반도기가 올라간다. 우리 선수들 가슴에도 태극 마크 대신 한반도기가 새겨진다. 관중석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고, 태극기를 갖고 온 관중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한반도기와 바꿔야 한다.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북한은 경기장에 태극기가 걸리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우리 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행사인 만큼 태극기와 인공기를 모두 배제하자는 취지
지금 북한에서는 언뜻 보기에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주민들의 북한땅 탈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지도부의 경제개혁 시동(始動)이다. 그러나 실은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요 결과인 것이다. 주민들이 빈곤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사태가 가속화하자 북한정권은 더이상 과거의 삶의 방식과 주민생활의 비참상을 방치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도달한 것이다. 경제를 살려 주민의 엑소더스를 막아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제시한 길은 ‘사회주의에 기초한 독립채산의 도입과 가격조정’(김용술
일본 축구가 해군학교의 영국인 교관이 쉬는 시간 틈틈이 공을 차게 한 것이 시작이듯이 한국 축구도 제물포항에 정박 중인 프라잉피시호의 해군 병사들이 부두에 내려와 공을 찬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축구를 정착시킨 것은 선교사요, 온상은 미션 스쿨들인 데도 양국이 공통되고 있다. 유교 사상의 영향이 덜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이 초기 선교의 텃밭이었고, 일본 선교사들의 텃밭은 고베(神戶)였으며 두 나라 축구의 고장이 이 두 도시인 것도 그 때문이다. 평양의 장로교파 학교인 숭실학교와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축구를 익힌
지금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는 약 50명의 탈북자들이 들어와 한국행을 요구하고 있고 이 중 21명이 6일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올 예정이다. 베이징 독일인학교에도 15명이 들어가 있다. 사흘 전에는 12명이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려다 중국경찰에 체포되거나 도망쳤고, 열흘 전에는 7명이 중국외교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탈북자들의 집단망명 러시가 이제 분명한 대세로 굳어졌고, 이것은 어떤 물리력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개인들의 단순한 ‘도주사건’이 아니라 북
서울지법이 1968년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나어린 초등학생 이승복군이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외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조작’이라면서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6월을, 그리고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에게 징역10월을 선고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판결은 무엇보다도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현정권 4년여 동안 휩쓸었던 ‘현대사 비틀기’에 대한 재교정(再矯正)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데에 이 판결의 또 다른 의
중국 경찰이 조선일보 베이징(北京) 지국에 사전통보나 영장도 없이 한밤중에 무단으로 진입해 가택수색을 벌이고 특파원을 심문한 일은 현대 국제사회의 척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도(度)를 넘어 지나치게 행사하는 공권력은 폭력과 다를 게 없다. 중국 경찰은 밤 11시30분에 7명이 들이닥쳐 2시간 동안 집과 사무실을 마구 뒤적였다. 영장 제시도 없었다. 특파원에게는 인적사항과 이주신고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특파원 가족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중국 경찰은 심야 가택수색의 이유도 분명하게 밝히지
“일본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선수가 되는 것은 한국에 ‘양날의 칼’과 같다.”일·북 정상회담 발표 후 한 외교전문가가 건넨 말이다. 양측은 1989년 다케시타 당시 총리의 북한에 대한 ‘과거사 사과 표명’을 시작으로 국교정상화 협상에 착수했다. 1990년 가네마루 당시 부총리와 북한 노동당 사이에 ‘국교 정상화와 과거 배상’을 명기한 공동성명이 발표됐고, 정부 간 교섭은 1992년 11월까지 8차례 벌어지며 급진전되는 듯했다.여기에 ‘찬 물’을 끼얹은 것이 ‘이은혜 사건’이다.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 조사에서
남북 경협추진위원회가 4일간의 서울회담 끝에 30일 내놓은 합의사항들은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경제분야의 실질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으며, 향후 추진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데 이르렀다.물론 아무리 구체적 표현으로 만든 남북간 합의일지라도 북측의 일방적 계산과 트집으로 어느 한 순간에 뒤집혀 온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고, 이번 합의 내용들도 대부분 옛것의 재탕 삼탕이라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 다만 지금 북한은 내부적으로 체제운명을 걸다시피 한 이른바 ‘경제관리 개선조
일본정부가 어제 발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및 일·북 정상회담 개최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 전개다. 지난 7월 이후 일·북관계가 일정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공식 외교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정상회담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위험을 감안할 때, 일·북 간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밀 협의가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는 의문이 일·북간에 오고간 협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