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明燮대학시절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다 뒷산까지 쫓기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진 돌기둥 하나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소년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가 써넣은 듯한 이 말 한마디는 전경 군단이 쏘아대던 페퍼포그보다 더 우리의 눈시울을 붉혔다. 그 ‘소년’이 이른바 386이 되고 486이 되었으며, 진보의 중견도 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과 함께 내일에 대한 소년의 꿈도 이루어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던 외국 언론의 오만도 우스개
중국 공산당이 당헌에서 ‘공산당 선언’이란 문구를 삭제했다고 한다. 만약 지구상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을 붉은 용에 비유한다면 ‘공산당 선언’은 그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가 아니었던가. 이제 그것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이론’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포린 팔러시’라는 잡지가 21세기 들어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사상 6가지 중 첫째로 마르크시즘을 꼽은 게 엊그제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두워질 무렵에만 날개를 펼친다.” 마르크스는 1848년 1월 브뤼셀에서 ‘공
朴勝俊 때는 1971년 10월 22일 오후 4시15분부터 오후 8시28분까지였다. 장소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인민대회당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周恩來)였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고,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毛澤東) 아래의 총리였다. 나중에 세계를 주무른 외교전략가로 평가받은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두 사람이 이날 4시간 넘게 마주앉아 주고받은 이야기의 절반 가량은 한반도 문제였다. 원래 백악관 1급비밀(Top Secret)이었다가 30년 만인 작년 4월에 비밀해제되고, 조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엊그제 미국 뉴욕에서 가진 한 연설에서 “북한이 우리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모색함으로써 남북이 공존 공영하길 원한다”고 밝혔다.남·북한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체제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급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같은 정부에 속한 외교부 대변인의 반박 성명까지 들을 만큼 ‘햇볕 전도사’를 자임했던 정 장관이 갑자기 북한의 ‘체제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같은 언급이 정부 내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정 장관이 그간 감춰온 소
정몽준 후보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제기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돌연 귀국한 배경을 놓고 일각에서는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2년 넘게 외국에 가만히 있다가 어째서 대통령선거를 한 달밖에 안 남긴 시점에 갑자기 들어왔느냐 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로선 현 시점에서 그의 귀국을 그런 특별한 선입견이나 특정한 입장에 서서 예단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도쿄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잇따라 제기한 주장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그가 주장한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 후보로서 정몽준씨의
崔普植/사회부 차장대우 congchi@chosun.com 김수영(金洙暎)의 시에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던 것에 분개하고…’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분개해야 할 대의명분 앞에서는 가만히 있고, 일상(日常)에서 쩨쩨하게 5원, 10원 잔돈푼이나 따지는 자신이 싫었던 모양이다. 쩨쩨함의 절정(絶頂)은 시일이 흘렀는데도 그런 잔돈푼을 잊지 않은 채 머릿속에 담아두는 데 있다. 이제 몇몇 담대한 세인의 기억에는 멀어졌을 테지만, 현대전자(하이닉스)가 200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다음달부터 대북 중유(重油)공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대북 압박 조치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강경 대응을 할 경우 대북압박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자칫 본격적인 핵(核)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 대북 압박에 들어간 이상 한·미·일은 치밀한 계획 아래 북한 핵문제를 조기에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한·미·일 공조다. 이번 중유중단 결정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혼선과 불협화음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대기업이 국책은행에서 빌려간 4000억원이 온데간데 없이 행방불명인데도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다. 원내 제1당의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문제를 둘러싼 테이프가 조작인 것으로 검찰이 결론내렸는데도 정작 테이프를 조작했다는 김대업이라는 사람은 버젓이 온존하고 있다. 온갖 거짓말과 조작과 음해와 비리가 판을 쳐도 그저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묻혀버리거나 덮어버리는 사회, “너희들은 몰라도 돼” “알려고 하면 다쳐” 하는 세상-그런 세상에서는 국민은 그야말로 쫄병신세다.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명색이 O
로버트 아인혼/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전 국무부 비확산 차관보이번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을 둘러싸고 빚어진 ‘북한 핵 위기’는 1994년의 ‘북핵 위기 상황’때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통해 압력과 협상을 적절히 구사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막는 등 전략을 먼저 세워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우선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의 지속은 스스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는 주변 관련국들의 조율된
한·미·일 3국이 엊그제 도쿄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북 중유(重油)공급 문제에 관해 합의하지 못한 것은, 북핵(北核) 공조체제의 이상징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위험한 일이다. 한·미·일 사이에 엄청난 의견차이와 내부분란이 있는 것처럼 비쳐질 경우, 북한은 이같은 상황을 역이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3국이 요구해 온 ‘신속한 북한의 비밀핵개발 포기’라는 목표 달성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북한에 제공될 11월분 중유를 실은 선박은 지난 6일 싱가포르를 출발했지만, 한·미·일 3국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공해상에 머물 수밖에 없
김귀곤 /서울대 교수·남북철도·도로 환경공동조사단장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이어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아세안지역 생물다양성보전센터’와 유네스코의 공동주관으로 접경보전지역의 관리와 행동계획의 조화를 모색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태국 등 동남아시아 접경지역의 보전지역과 몽골·중국·남한·북한·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접경보전지역이 주대상으로 다뤄졌다. 여기에는 백두산과 DMZ도 함께 포함돼 있다.접경보전지역이란 하나의 생태계지만 정치적으로 갈라진, 보전가치가 있는 생태계의 효율
李鎭雨 /계명대 교수ㆍ철학우리가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는 자신에게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금방 부정적 의미로 탈바꿈하는 것들이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그것이다. 사회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역동적 입장이 진보적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가치와 상태를 유지하려는 정태적 태도가 본래 보수적이다.가부장적 권위주의, 수직적인 군사문화, 폐쇄적 민족주의 등과 같은 비민주적 요소들을 비판하는 태도가 대체로 진보로 이해된다면, 이러한 비민주적 관계는 비판하면서도 이 관계를
金東圭/고려대 교수·북한학 지난달 하순 북한의 농어촌을 1주일간 돌아보고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주민들 거의가 10여년간에 체격이 왜소화돼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인종학적으로 원래 북방 주민들은 남방에 비해 체격이 크고 강인한 골격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은 주민들의 영양실조를 초래했다. 주민들은 지방질이 부족한 초식으로 겨우 연명하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자연히 평균신장이 줄게 됐던 것이다. 그러자 김정일은 전국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키 크기운동’을 지시했는가 하면 9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종합대
지난 4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는 낯선 손님들을 맞았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피랍된 486명의 납북자 가족 대표 5명이었다.이들은 ‘납북자 가족들의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박경서(朴庚緖) 상임위원 등과 20분간 면담했다.오랜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이들이 전한 인권 침해의 실상은 참혹했다. 연좌제와 감시, 고문 등으로 숨죽인 채 살아온 세월이었다.지난 19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장 최원모씨의 아들 최성구(崔成九·61)씨는 전북의 명문고를 졸업했다. 최씨는 아버지의 납북 이후 어려워진 가정 형
楊相勳/정치부 차장 jhyang@chosun.com 국가에선 국익을 위해 선악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나라 최고 정보기관이 그렇다.미국 CIA, 독일 BND, 프랑스 DGSE,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 등의 정보기관들이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암살·간첩·반란·역선전·선동 등의 공작을 펼쳐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은 제3국에서 적국의 요인을 화학무기로 암살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실패해 음모가 노출됐지만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그들이 공작을
북한이 엊그제 끝난 남북 적십자사회담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도 말라"고 한 것은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망언이다. 납북자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북한은 불과 한달반 전쯤 평양을 방문한 일본 총리에게는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고개 숙이기를 자청해 놓고서, 똑같은 문제로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은 철저히 외면해버린 북한은 더 이상 '민족'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북한의 이처럼 상반된 태도는 현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昌基북한은 요즘도 매일같이 미국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북한이 중대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이 미국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지난달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보면, 미국의 입장과 태도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너무나 동문서답(東問西答)식이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과연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될지 의문스럽고, 10년 전의 ‘북한 핵 위기’가 되풀이될 것 아닌가 걱정된다.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며, 북한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자신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어제 한 강연에서 “북핵(北核) 포기를 위한 압박수단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은 북핵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거꾸로 대북 협상력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는 백해무익한 언동이다. ‘북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상식론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북한과 생산적인 대화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핵 위기’를 체제 생존용 협상카드로 사용할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철저히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경제제재 같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을 지켜주고 있으니 남북이 함께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북한 조평통(祖平統)의 29일 성명은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도대체 북한 지도부가 지금의 핵(核)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에 이런 가당찮은 말을 버젓이 내놓는지는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들의 정세 인식이 터무니없을수록 한반도 위기 상황은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북한의 주장은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과의 이른바 ‘외세 공조’를 버리고 자신들과의 ‘민족 공조’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는
130년 전 신미년의 한미(韓美)전쟁을 유발했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쑥섬 곁에 정박, 통상을 강요했을 때 그 배에 초대되어 승선했던 이가 있다. 지택주(池宅周)라는 당시 16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와 함께 승선하여 양식을 피로받았는데 “냄새가 고약하여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고 세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돛대가 두 그루 서 있고, 삼끈이 산발한 여자머리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했다. 평안중군(中軍=사령관)을 감금하는가 하면 위협발사한 포탄에 군민이 살상당하자 성난 백성들이 투석으로 대항했다. 원래 평양 투석군은 돌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