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송두율씨의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그 어떤 진실도, 반성도, 진정한 사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송씨를 조사한 국정원의 최고책임자인 고영구 원장이 엊그제까지 ‘한통련 명예회복과 고국 자유왕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대표였음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그런 국정원의 조사결과가 진실과 동떨어졌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지금 국민들은 사실 송씨의 해명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그의 귀국을 놓고 사전 보고를 받고 협의를 벌였을 현 정부 수뇌부의 속내가 무언지에 더욱 관심이 쏠려있다고 할 수 있다.우선 궁금한
李暎珪/서울지검 조사부 부부장검사최근 재독학자 송두율(59)씨의 처리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두율씨는 즉각 구속수사해야 한다. 일부에서 그에 대한 선처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그것이 부당한 이유는 이렇다.첫째, 형평성 및 법집행의 일관성에 어긋난다. 그동안 송씨보다 훨씬 경미한 죄를 범한 사람들도 국가보안법위반 사범은 대체로 구속해왔다. 그것은 남북관계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6·15 공동선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한총련 간부들의 행위를 보라. 송씨의 범죄 혐의와 비교도 되
국정원의 ‘송두율 사건’ 조사 결과는 그동안의 의혹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송씨는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북한에서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정식 입당했으며, 거액의 자금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구체적인 대남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그는 또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충성맹세문도 정기적으로 친필로 써 북한에 전달해 왔다고 한다. 그가 김일성을 면담하고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까지 오른 것도 이런 활동과 충성심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도 충격적이지만 그동안 보여 온 송씨의 태도 역시 공작원에나 걸
秦聖昊보수당인가, 노동당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영국 집권당과 공영방송 BBC는 중요한 고비마다 갈등을 빚어왔다.1987년. 집권 보수당은 포클랜드전 당시 BBC에 대처 총리의 ‘신속하고도 과감한’ 정책결정과 ‘영웅적인’ 승리를 그린 특집방송을 방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BBC의 대답은 “노우(No)”. 대처 총리는 BBC가 포클랜드전 보도에서 엄정중립과 공정을 기하는 데 울분을 삭이지 못했으며, 심지어 BBC가 영국군을 ‘아군’ 아닌 ‘영국군’으로 호칭한 것과 관련해 BBC의 정부관서 취재에 불이익 차별조치한 일도 있었다.세월을 훌쩍
/李翰雨논설위원 hwlee@chosun.com송두율 선배!먼저 호칭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겠군요. 연배로 저보다 한참 위이고 선배께서 스승으로 모시는 위르겐 하버마스라고 하는 독일의 사회철학자를 좋아했던 철학도로서 ‘선배’라는 호칭이 적절할 듯합니다.또 한 가지, 제가 굳이 ‘교수’라는 호칭을 피하는 데는 우리 학계와 지식인 사회의 외국학문 사대주의에 대한 거부감도 일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뮌스터대학 ‘임시교수’라면 1년짜리 시간강사로 불리는 ‘겸임교수’에 가깝습니다. 마침 뮌스터대학 사회학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1
민주화운동가와 통일운동가로 자처하면서 학문적 지명도를 쌓아온 송두율씨가 지난 30여년간 북한 노동당원으로 활동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은 결코 과거의 문제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 시대의 민주화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통일 논의에서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불순한 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문제 담론과 통일운동에는 북한의 의도와 작용이 얼마든지 개재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간 송두율씨에 대한 우리 사회 일부의 시각과 평가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친북활동
洪準浩/정치부장 jhhong@chosun.com 우리 사회에서 ‘북한’으로 상징되던 금기(禁忌)의 벽(壁)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 북한은 155마일의 금이 그어져 있지만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사이가 아니고, 사람과 물자가 수시로 오가는 상대가 됐다. 정치권도 예외지대가 아니다.며칠 전 가칭 통합신당의 송영길, 임종석 의원이 북한을 다녀왔다. 그러나 정치권, 정부, 언론, 그 어느 곳에서도 요란을 떨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 이조차 드물다. 임종석 의원은 89년 전대협 의장으로서 임수경씨를 밀입북시켜
요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의 과거 행적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수사기관인 국정원이 아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중대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인 송씨의 주변 인사들이다. 송씨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자청, “송씨가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요지는 “73년 입북하면서 공항에서 노동당 입당서를 썼지만, 당시 이런 절차는 우리나라 입국시 입국 신고서를 쓰는 것과 비슷한 절차였다. 아무런 의미 없이 입당서를 썼고, 노동당원의 활동은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가토 치히로(加藤千洋) 기자는 올해 56세의 중국 전문가다. 그는 1980년 중국 랴오닝(遼寧)대학에 유학한 뒤 올해로 24년째 중국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베이징(北京)특파원과 중국 총국장(總局長), 국제부장을 거쳐 현재는 편집위원의 타이틀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韓中日) 미디어 협력 심포지엄’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한국과 국교가 없는 중국이 최초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발표됐습니다. 당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에게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대북 정책이나 사업일지라도 그 실행 과정과 절차는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사법적 차원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다. 피고들은 대북송금이 이른바 통치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확인한 판결 내용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대북 접근방식과 인식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재독(在獨) 사회학자 송두율씨에 대한 국정원 조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은 한 가지에 쏠려 있다. 이번 기회에 송씨가 ‘김철수’라는 이름의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과 동일인인지, 그리고 10여 차례에 걸친 방북 과정 등을 통해 친북·반한 활동을 했는지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내자는 것이다.그간 말도 많던 송씨가 귀국해 국정원에 출두한 만큼 이제 이 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국내적 논란을 매듭지을 때가 됐다. 더욱이 이 문제는 매년 5000억원 가까운 돈을 쓰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 국정원의 존재 가치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역대 국정
尹平重/한신대 철학과 교수천신만고 끝에 송두율 교수가 귀국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독일에 간 지 무려 37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당당한 일가를 이루었으나, ‘친북인사’라는 이유로 귀국을 계속 거부당했다. 송 교수를 둘러 싼 이데올로기적 주홍딱지의 압권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주장이었다. 즉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황 비서의 주장을 진실로 보기 어렵다’는 우리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송 교수에 대한 붉은색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남과 북 사이
20년 전 미얀마 아웅산 묘지에서 폭탄테러를 자행해 현지에서 복역 중인 북한 공작원이 뒤늦게 북한에 속았음을 깨닫고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제3국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수뇌부를 한꺼번에 제거하려 했던 아웅산 묘지 테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가 주도의 테러로 KAL기 폭파 등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테러국가로 낙인찍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여태까지 사과는커녕 자신들의 범행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느덧 우리
1988년 9월 ‘사회와 사상’이라는 월간지가 창간했다. 2년 남짓만에 사라진 이 잡지는 우리 사회에 잠재돼 있던 좌파세력의 확산에 근거지를 제공했다. 50년대 장준하의 ‘사상계’가 한국사회에 자유민주주의의 숨결을 불어넣었다면, ‘사회와 사상’은 우리 사회에 깔려있던 사회주의가 표면에서 결정(結晶)되는 계기를 제공한 잡지다. ▶일반인들이 송두율이라는 낯선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사회와 사상’ 89년 1월호에서였다.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철학 프로필’이라는 저서에서 던진 질문인 ‘아직도 철학은 필요한???똑같은 제목의 글을
李先敏우여곡절 끝에 입국한 재독(在獨) 학자 송두율(宋斗律) 교수의 삶은 분단시대 해외에서 활동하는 좌파 지식인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송 교수의 행적은 ‘민주인사’와 ‘친북(親北)인사’의 양면을 갖고 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 송 교수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사회건설협의회’ 결성을 주도하고 초대 의장을 맡으면서이다. 1982년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 된 그는 제5공화국 정권에 대해서도 민주화운동을 계속했다. 여기까지는 송 교수를 ‘민주인
金昌基/국제부장9·11테러 2주년이 지났다. 테러와의 전쟁 여파로 한국인들도 미국으로 가려고 할 경우 처음 비자 받기부터 무척 어려워졌다. 심사기준이 강화되고 시간도 몇 달씩 걸린다.하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미국비자 없이도 (단기방문의 경우) 미국에 갈 수 있다. 일본은 유럽 선진국들처럼 미국의 비자면제 대상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에게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의 큰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안보의 근간을 미국과의 동맹체제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번 비교를 해본다면 한·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미국과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는 가벼운 긴장감이 돌았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에서 “동지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공항에 상주하는 경찰·기무사·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은 동향 파악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비행기가 착륙하고 탑승교를 빠져나오는 해외 체류 ‘반정부’ 인사들은 다소 굳은 표정이었지만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43년 만에 귀국한다는 한계일(여·72)씨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서해가 너무 아름다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옥살이를 한 강종헌(52) 한통련 조
미국을 방문 중인 최병렬(崔秉烈) 한나라당 대표가 17일 오전 덩컨 헌터 미 하원 군사위원장을 만난 장면은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최 대표는 이전에 만난 다른 미국 지도자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주한미군의 2단계 재배치는 최소한 북한 핵문제 해결시까지는 늦춰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자 헌터 위원장은 “미군 재배치는 북한의 야포와 장사포 사정거리 내에 있는 미2사단의 보호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며 “한국에는 용맹스러운 맹호부대, 백마부대도 있는데, 그 자리를 한국군으로 대체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요지로 응
지난 1970~80년대에 해외에서 반체제 또는 친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한국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정부가 귀국을 허용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들의 과거 활동을 문제삼아 조국 방문마저 막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 수준에도 어울리지 않는 낡은 모습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이 아무리 과거 어두운 시절의 매듭을 푸는 작업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은 적법하고 질서있게 이루어지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칙이다. 재일(在日)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친북적인 활동을 했다는
알렉산드르 만수로프Alexandre Y. Mansourov/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 교수북한 최고인민회의는 1948년 9월 출범한 이래 거수기 역할만 했을 뿐, 어떠한 의미있는 변화나 놀랄 만한 일도 기대할 수 없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난 8월 3일 선거를 통해 더욱 현대화되고 더욱 깨인 대의원들을 뽑았다. 9월 3일 개회한 제11기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역사상 가장 젊고(55세 이하가 52.3%) 가장 많이 교육 받은(대학 또는 초급대학 졸업자가 약 98%) 대의원들로 구성됐다. 대의원들 가운데 다수는 전후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