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관계
 북러관계 - 경제관계
 닉네임 : NK조선  2013-10-29 17:20:00   조회: 418   
소련 해체이전, 북한에게 있어 소련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우방국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제1의 우방국이었다. 1949년 3월 17일 북한과 소련은 '경제 및 문화적 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행했다. 또 소련은 북한의 전후 복구사업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물품과 시설을 거의 무상으로 지원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을 보면, 1953년 8월12일 소련은 10억 루블의 대북원조를 결정했으며, 김일성은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1956년)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 소련에 원조를 부탁했다.

북한은 1960년까지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17억600만 달러에 달하는 재정원조를 받았다. 그 중에서 소련에 의한 유무상 원조가 약 45%에 달하며, 또 59개의 공장과 산업시설이 신설, 복구, 확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소련이 27개 대상을 지원했다.
1960년대 초 중소분쟁기 북한은 중립적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정치적 자주성을 확보하고 중소양국으로부터 경제·군사적 원조를 획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념적 문제와 관련하여 점차 친중국적 태도를 띠게 됨에 따라, 소련과의 교역은 정체되게 된다. 그 결과 북한의 제1차 7개년계획(1961~1967년)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1964년 10월 14일 흐르시초프 실각 이후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소련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원조가 재개된다. 양국은 1966년 6월 20일 '상호물자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동 협약에 의하면 양국의 교역량은 1965년에 비해 80% 증액하고 물자의 종류와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렇듯 소련이 주도한 사회주의권의 대북 경제지원은 1960년대 말까지 북한이 이룩한 외형적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었다. 먼저 대외경제관계를 사회주의국가들에만 의존함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음으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의 문제점들이 북한경제에 이식됨으로써 비능률과 비효율성을 구조화시켰다.

1960년대 말의 데탕트 시작기로부터 1970년대 말까지 북한이 서방국가와의 무역에 치중한 결과, 북소 교역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자국의 수출품 중에 특정품목의 국제시장가격이 상승하면 소련에 대한 공급계약을 무시하고 이들 품목을 주로 유럽과 일본에 수출하였다.

북한은 대서방 경제관계 확대가 실패한 후 또 다시 소련과 경제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1976년 2월 북한과 소련은 '1976~1980년 사이의 물품 상호공급과 대금지불에 관한 협약'을 맺었으며, 동 협약에 의하면 양국은 5년간 물품거래를 40% 늘리고 공급물품의 범위도 확대하기로 하였다.

1985년 12월 북한과 소련은 '1986~1990년 기간 동안의 무역 및 경제협력 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의 협력체제는 소련이 북한에 공장건설과 원료 및 기술을 지원하고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하여 생산량의 일부를 환부하는 형태이며, 양국은 해당기간 동안 교역액을 과거 5년간에 비해 2.7배 증가시키기로 약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소련간의 교역은 증가했으며, 북한의 무역에서 소련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1984년에 34%에 불과했던 것이 1987년에는 50%를 상회하게 된다(임강택, "북한 대외무역의 특성과 무역정책 변화전망," 민족통일연구원, 1998).

1990년대에 들어와 소련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북한과 소련과의 경제관계는 급변하게 되었다. 1990년 11월 2일 북한과 소련은 '무역대금 경화결제 협정'을 체결하여 1991년부터 무역거래를 국제 가격에 따라 현금 결제하는 등 순수 상업베이스로 전환했다. 즉 양국의 경제 관계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소련의 북한에 대한 일방 원조에서 정상적인 교역관계로 돌입했다.

이에 따라 우호가격과 물물거래에 의해 북한과 소련이 거래하던 연간 80만t에 달하던 원유는 경화결제로 인해 1991년 4만t, 1992년 3만t 정도로 그 물량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기타 석유제품·석탄·괴탄 등 연료와 에너지원 수입 또한 1/10로 감소하였다. 그 결과 북한은 에너지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경제의 파탄 상황을 초래했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는 상호경제협력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2년 12월 양국은 북한과 러시아연방간의 최초의 상호무역의정서인 '시장경제와 자유가격에 기초한 무역 및 경제교류를 위한 새로운 기본협정'에 서명하였다.

이 의정서는 양국 모두 잠재적 협력을 위한 지역과 유대를 지속하기 원하는 의도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또 북러 양국의 경제난과 경화결제 시행 등으로 양국의 무역량이 지속적으로 감소됨에 따라 러시아는 "북한과의 무역·경제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러시아 극동지역과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중신으로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불안에 따른 생산성 하락, 북한의 경제난과 관련해, 양국간 호혜적 교역관계의 재형성 및 경제협력의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다('탈냉전기 북한의 대중국·러시아 관계, 민족통일연구원, 1993년 10월).
2013-10-29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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