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범민족대회 - 연도별 대회
 닉네임 : NK조선  2013-10-30 17:18:43   조회: 640   
◆ 제1차 대회(1990년)

3차례에 걸친 파행적인 예비회담을 거쳐 1990년 8월 13일 백두산정에서 남측대표들이 참석치 못하고(밀입북한 황석영씨만 대표자격으로 참석) 북측 및 해외측 대표들만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 14일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구토론회'가, 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 본대회 및 '백두-한라대행진' 출발모임이 각각 개최됐고 16~17일에는 평양에서 연환모임·체육행사·'문학의 밤'행사 등이 진행됐다.

이 대회가 반쪽대회로 열린데 대해 북측 및 해외측 추진본부 대표들은 한국정부에 그 책임을 전가했으며 이 대회직후인 8월 19일에는 공동운영위원회 명의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결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 제2차 대회(1991년)

제2차 대회는 북측본부 주관아래 제1회 '청년학생통일대축전'과 맞물려 추진됐으며 여기에는 전대협이 파견, 밀입북한 박성희와 성용승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당초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정부의 불허로 무산되자 국내(경희대), 해외(동경), 북측(판문점)에서 분산 개최됐는데 북측에서는 8월 7일 백두산에서 열린 '백두-한라대행진'출정식을 시작으로 ▲이 행진대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8.10)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정치대토론회(8.12, 평양) 등으로 이어졌다.

8월13일부터 15일까지 대행진대와 범민련 관계자들은 판문점을 통과 남행을 시도하는 한편, 판문점에서 각종 정치선전집회를 열고 ▲주한미군 철수 ▲남북불가침선언 채택 ▲한반도 비핵지대화 실현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했다.

◆ 제3차 대회(1992년)

1992년 2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발효되는 등 남북한 정부간 대화가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북한은 1992년 8월 제3차대회를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이른바 민간급 대화공세를 전개했다.

이 대회 역시 제2차 대회와 마찬가지로 청년학생통일대축전(제2회)과 병행해 열렸는데 전대협과 해외의 친북·반한청년단체들과 연계, '전민족적 청년학생 정치연합체'인 '조국통일 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을 결성하기도 했다.

◆ 제4차 대회(1993년)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을 끝으로 남북한의 정부간 대화가 중단된 상황속에서 북한은 범민련 및 범청학련 북측본부를 앞세워 제4차 범민족대회와 제3차 청년학생 통일대축전을 추진, 민간급 대화공세를 펼쳤다.

전대협을 이어 발족한 한총련이 이들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북측과 합의함에 따라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 백인준을 단장으로 한 북측대표단 300명은 8월 13일 판문점을 통한 입경을 시도했으나 한국정부의 불허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이들 행사는 남과 북, 해외에서 분산 개최됐는데 북측은 8월 14일 평양에서 전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에 관한 대토론회 및 범민족 통일음악회 등을 개최한데 이어 15일에는 범민족대회와 범청학련 북측본부 중앙위 확대회의 등을 개최하고 한국측에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에 조속히 응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청년학생들의 반정부·반핵·반미투쟁을 선동했다.

◆ 제5차 대회(1994년)

이 대회는 15일 일본의 동경에서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과 해외 각지의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대회에서는 7000만 겨레, 세계평화애호 인민들,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후 최초로 진행된 범민족대회를 맞아 큰 규모로 각종 행사들을 치렀다.

1990년대 통일실천결의집회, 조국통일대토론회, 1990년대 조국통일을 위한 청년학생연단, 통일문화의 밤 등을 잇달아 진행했다.

특히 '90년대 통일실현 결의집회'에서는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끝까지 옹호·관철하며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의 기치아래 1990년대에 통일을 성취할 것을 다짐한다는 등의 5개 항의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 제6차 대회(1995년)

해방 50주년을 맞아 북한은 1995년 연초부터 정당·단체 연합회의 등을 통해 해방 50주년의 남북한 공동기념을 주장해왔으나 한국측이 당국간 논의과정을 거부함에 따라 북한 주도로 제6차 범민족대회를 치렀다.

통일대축전이 주가 된 이 행사에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 유미영은 축전 개막사를 통해 "90년대 연방제 통일을 이룩할 것"을 강조했으며 '대민족회의'사진 및 미술전시회, 범청학련 1차회의, 통일음악회(8.15, 통일각), 범민족대회(8.15, 통일각)등이 연이어 개최됐다.

◆ 제7차 대회(1996년)

범민련은 제4차 공동의장단 회의를 4월 25일 중국의 심양에서 열고 제7차 범민족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결정했으며 범청학련도 1996년 4월 20일부터 3일간 북경에서 제5차 공동의장단 회의를 열어 제6차 통일대축전을 서울에서 개최키로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불허방침에 따라 대회의 서울개최는 저지됐으며 북한은 1996년 8월 8일 성명을 발표, 대회를 평양 서울 심양에서 분산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회는 14일 판문점에서 개막됐으며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한 유세홍·도종화 등과 당비서 김용순 등 북한의 대남업무 관계자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서울에서는 한총련이 연세대에서 강행한 제6차 통일대축전으로 인해 진압을 담당하던 김종희 의경이 사망했으며 연세대는 4억5700여만 원 상당의 물질적 피해를 입기도 했다.

◆ 제8차 대회(1997년)

8월 14~15일 양일간 판문점에서 진행된 이 대회에서 북한은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 관철 결의대회'로 행사의 문을 열었으며 당중앙위 비서 김용순(2003.10.26-사망)은 연설을 통해 "김정일시대에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어버이 수령님의 간곡한 유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진전시회, 범청학련 제2차 총회, 범청학련 결성 5주년 보고대회 등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잇달아 열렸으며 8월 15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된 '97범민족회의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일 국제공조 저지투쟁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투쟁 ▲연방제에 따르는 통일투쟁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친북단체 거부분위기 확산에 따라 재야단체들이 '1997평화통일민족대회'를 개최하고 범민련과 한총련의 참가를 제외시킴으로써 행사는 극도로 위축된 채 진행됐다.

◆ 제9차 대회(1998년)

'98범민족회의는 북한이 '8·15통일대축전'을 제의, 추진함에 따라 통일대축전 행사와 함께 병행하여 진행됐다. 남측에서는 8월 7일 밀입북한 김대원과 황선 등 한총련 대표 2명이 참가했다.

'98범민족회의는 8월 15일 오전 9시부터 판문점에서 시작된 통일대축전 개막식 및 동포단합대회가 끝난후 오전 10시 30분부터 판문점 통일각에서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는 모두 4개항의 공동결정서를 채택했다.

결정서 내용은 ▲민족대단결위업, 조국통일위업 실현에서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고 철저히 구현해 나갈 것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전개할 것 ▲반통일 분열세력의 반북대결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킬 것 ▲범민련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남측본부를 성원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해 나갈 것 등이다.

◆ 제10차 대회(1999년)

'99범민족대회는 제10차라는 점에 의의를 두어 그 어느 때보다도 행사규모나 비중을 높여 개최했다.

'8·15범민족통일대축전' 기간 평양과 개성에서는 ▲전민족대단결 결의대회 ▲범청학련 통일농구대회 ▲범민족통일대축전 연합회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착공 ▲제10차 범민족대회 기념 사진전시회 및 미술전시회 ▲범청학련 통일노래무대 ▲판문점 3자 연합대회 ▲99범민족회의 제4차 범청학련 총회 ▲통일토론회 ▲남북, 해외 연대 연환모임 등이 진행됐다.

또한 '99범민족대회가 10차에 이른 점을 고려, 제1차때부터 참가한 남북·해외대표들에게 범민족통일대축전 공동준비위원회 명의로 표창장과 기념품을 수여했다. 북한은 통일대축전 개최에 때맞춰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착공하기도 했다.

99년도 '8·15범민족통일대축전'의 주제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이며 기조로서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조국통일 근본원칙으로 내세우고 투쟁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 근본문제로 내세우고 투쟁 ▲2000년도의 가까운 몇해안에 범민족통일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10차 범민족통일대축전은 일정상 전 대회보다 하루가 늘어나는 등 비교적 대규모로 이루어졌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고조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9차 행사의 경우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여러 행사에 참석했으나 10차 때는 김영대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과 유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행사를 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용순 비서는 개막식 행사에 잠시 모습을 내비췄을 뿐이다.

내용면에서도 ▲민족대단결 5대방침 관철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과 국정원해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강조하는 등 9차 행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민주노총과 직업총동맹간 노동자축구대회가 이 행사와 때를 같이 해 열려 남북간 동질성을 고조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 제11차 대회(2000년)

북한은 6월말 '6·15남북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대회를 개최하자는 입장을 전달했다. 북측이 보내온 문건에는 ▲한총련 대표 방북 보류 ▲민족통일대토론회 보류 ▲남측이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방향에서 대회를 분산 개최할 것 등이 명시돼 있었다.

이에 따라 8·15를 전후하여 북한에서는 범민족대회 대신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정부·정당·단체 연합대회 ▲조선의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 공동기도 주일예배 ▲남북 불교도 8.15동시법회 등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행사는 정부·정당·단체 연합대회로, '6·15남북공동선언' 실천 3개 방안과 남북교류협력 강화 등 4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이 대회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과 양형섭 부위원장, 홍성남 내각총리, 조선사회민주당 김영대 위원장,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조규일 서기국장 등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큰 규모로 치러졌다.

북한의 모든 사찰에서 열린 '남북 불교도 8·15동시법회'도 눈여겨볼 만한 행사였다.

이 행사는 남과 북에서 동시에 열린 공동행사로, 남북 불교인들의 '조국통일' 의지가 담긴 남북공동발원문이 낭독됐으며 북한의 평양방송도 "북남 최고위급회담에서 마련된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여나갈 데 대한 실천적 의지가 표명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8월 15일 평양 봉수교회, 칠골교회, 각지의 '가정교회'에서는 '조선의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 공동기도 주일예배'가 열렸다.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행사 역시 남북 공동선언을 적극 지지하고 이의 실천을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을 호소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백남순 외무상, 강정모 무역상, 인민무력부 여춘석 부부장 등 당·정·군 고위간부들도 광복 55주년을 맞아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조·소 해방탑', '소련군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는 등의 일정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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