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햇볕정책 - 역대정부의 대북정책
 닉네임 : NK조선  2013-10-30 16:41:03   조회: 1062   
분단이후 한국정부의 구체적인 통일정책이나 대북정책의 내용은 당시의 국제정세와 남북간 역학관계 등의 환경적 요소에 따라 달라져 왔으며, 다소 시차는 있지만 크게 볼 때 국제냉전의 확산·조정·해체 등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해 왔다.

우선 분단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국제냉전의 확산과 함께 남북한이 상대방의 체제를 부정하는 가운데 치열한 대결로 일관했던 기간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초대정부로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북한은 유엔결의에 따라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대한민국에 합류해야 함을 선언하였다.

만일 북한이 이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통일을 위해서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정부수립 당시의 국제법적, 도덕적 우월성에 기초하여 북한당국을 철저히 부정하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방법론적으로는 한반도문제의 국제화, 특히 유엔을 통한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북한지역에서의 자유선거 실시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1960년 4·19혁명으로 출범한 장면 정부도‘유엔 감시하의 남북 자유총선거’를 통일정책의 기조로 제시하는 등 약간의 변화는 보였으나, 기본적으로 이승만 정부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였다.

박정희정부는 초기 '반공태세의 재정비·강화'와 '통일을 위한 실력배양'에 주력한다는 즉, '선(先) 건설, 후(後) 통일'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월 10일 연두교서를 통해 정부의 통일방안은 유엔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통일, 실지회복을 통한 국토통일임을 밝히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어 나갈 것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1966년 1월 18일 국회에 보낸 연두교서에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조국근대화야말로 남북통일을 위한 대전제요, 중간목표이다. 통일의 길이 근대화에 있고 근대화의 길이 경제자립에 있는 것이라면 자립은 통일의 첫 단계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1970년대 초반 국제냉전이 조정기에 접어들면서 남북관계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1968년 7월 닉슨독트린이 발표되고, 1970년대에 들어 미·중, 일·중의 접촉, 미·소·일·중 4국간 새로운 세력균형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등 국제적으로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한 1960년대 우리 경제성장에 힘입어 남북간 역학관계가 어느 정도 균형을 갖게 됨에 따라 대북정책도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1970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2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한간 선의의 경쟁을 촉구하는 '평화통일구상선언'을 발표하였다. 1971년 8월 12일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의 개최를 제의하였다. 이를 북한적십자회가 수락함으로써 분단 26년만에 인도적 문제에서부터 남북대화의 통로가 열리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72년 7월 4일에는 남북 양측의 당국자간 비공개 접촉과 상호방문을 거쳐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간 합의문서라 할 수 있는 7·4 남북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남북대화 진행과정에서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의 통일 3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이른바 대화환경의 개선, 군사문제의 우선해결 등을 요구하며 통일전선전략을 노골화함으로써 남북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남북관계도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1981년 3월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22일 국정연설을 통하여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 발표하고, 1982년 2월 1일 후속 실천조치로서 20개항에 걸친 구체적 시범사업을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을 북한에 제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전개하게 된다. 특히 1984년 9월 8일 북한의 대남수재물자 제공 제의를 우리측이 수락함에 따라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남북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1984년 11월 15일 남북경제회담을 필두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체육회담 등 일련의 회담이 열리고, 특히 1985년 9월에는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성사되었다. 이후에도 남북간 대화는 계속되었으나, 북한이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내세우며 대화를 회피함으로써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시기 남북관계는 국제냉전이 조정국면에 들어섬과 함께 남북관계도 새로운 관계 설정을 모색한 시기로 규정할 수 있는 바, 기본적으로 체제경쟁에 주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화를 모색하였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때로는 대화를 통한 화해분위기가, 때로는 북한의 도발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는 '대결과 대화가 교차되는 관계'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80년대 후반 국제냉전이 해체국면에 접어들면서 남북관계도 또 한번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우선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이 급속히 진전되는 등 세계적으로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국제 냉전의 해체에 부응하기 위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먼저 1988년 7·7특별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북한을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선의의 동반자'로 간주하고,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공동체적인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이었다. 또한 그 실천조치의 일환으로 1990년 8월 1일에는'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함으로써 남북교류협력시대의 개막을 가능하게 하였다.

노태우 정부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1989년 9월 11일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통해 발표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남북고위급회담이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6차 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및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되었다.

또한 제7차 회담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와 남북교류·협력 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화해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와 분야별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이 증폭되고, 북한이 우리의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로 1993년 1월 29일 모든 남북당국 사이의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없음을 선언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993년 2월 25일 출범한 김영삼 정부도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천명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하였으나,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한 제재조치에 '서울 불바다', '전쟁불사' 등의 발언으로 위협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위기국면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후 북·미간에 고위급회담이 개최되고 제네바 기본합의문이 채택(1994.10.21)됨으로써 북한 핵문제는 일단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한편,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호응할 의사가 있음이 확인됨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이 이루어졌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은 개최되지 못하였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1995년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산 쌀 15만t 직접지원 등 북한동포의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을 전개하고 대북 경수로지원사업도 꾸준히 추진하였으나, 북한의 회피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는 경색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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