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상
 8월종파사건 - 개요
 닉네임 : NK조선  2013-10-30 16:34:23   조회: 617   
1997년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황장엽씨는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착하게 된 계기는 '8월 종파사건' 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최창익 박창옥 윤공흠 김강 이필규 서휘 등이 김일성 비판의 선봉에 섰다가 모두 중국으로 망명하거나 제거된 바 있는데, 이들 반대파를 김일성이 '종파', '종파분자', 또는 '종파주의자'라고 규정하면서 맹공하였다. 북한연구자들은 이 시기 권력투쟁을 일컬어 '8월 종파사건'이라 부른다.

김일성 반세기 집권사에서 최대의 위기로 평가되는 '8월 종파사건'은 소련에서 스탈린 사망(1953.3)과 흐루시초프의 등장 및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으로부터 발단된다.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소련공산당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흐루시초프가 전임자인 스탈린을 공격하면서 사회주의권에 일대 파문을 던진 스탈린 비판은 스탈린주의에 충실하였던 북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후 권력기반이 강화되는 추세에 어느 정도 비례해 그 강도를 더해가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의 경향이 다소 주춤해지고 당을 정점으로 하는 집체적 지도의 의미가 새삼 강조된 것이다. 그 동안 김일성에 국한해 사용하던 '수령'이라는 경칭이 자취를 감추고 대신 당이, 그것도 김일성 자신의 입을 통해 '인민의 정치적 수령'으로 표현된 것은 당시의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한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 동안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당권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소외그룹이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에 힘입어 김일성의 리더십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이 김일성을 상대로 내건 대의명분은 개인숭배 타파와, 레닌 이래의 지도원칙인 집체적 지도로의 환원이었다.

김일성파는 처음 당내의 분위기를 의식해 표면상 이들의 주의주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판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림으로써 교묘히 예봉을 피해갔다. 개인숭배의 경우 과거 박헌영이 주로 일삼던 것으로 노동당내에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었다. 집체적 지도 역시 당창건 이래 한번도 그로부터 일탈해 본 적이 없다는 식이었다.

김일성파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는데 한 마디로 사회주의권 전반의 대세에 비추어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김일성의 리더십과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제3차 당대회(1956.4)를 통해 당을 확실히 장악한 경험에서 보듯 김일성파의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그 동안 김일성의 독단과 독주에 소외감을 느껴오던 부수상 최창익을 비롯한 연안파 인물들과 부수상 박창옥 등 소련파 일부가 연대하고, 사태의 추이를 보아 조선의용군 출신의 장평산 등 연안파 군부 인물들이 가세한다는 계획 아래 연합전선을 형성해 김일성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나섰다.

마침 5개년계획(1957~1960)을 추진하면서 외부원조가 절실하였던 시점에서 김일성이 1956년 6월 1일부터 7월 19일까지 당·정 핵심간부들을 이끌고 소련 동독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몽고 등 7개 국 방문길에 올랐다.

방문목적은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친선과 경제협력이었다. 김일성이 약 50일간의 장기외유에 오르자 이 틈을 이용해 조직적이고 구체적으로 거사계획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계획단계에서 기밀이 누설되어 김일성파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결국 8월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비판의 선봉에 섰던 서휘 윤공흠 김강 이필규 등이 중국으로 망명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만다.
2013-10-30 1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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