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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녘추억]『여자들이 자전거 타면 재수 없다?』
 닉네임 : nkchosun  2005-11-02 13:53:07   조회: 5696   
김명석(가명) 전 조선노동당 간부

대한민국에 온지 이제 1년이 넘었다. 남성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오니 불편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여성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몸에 배있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흔한 농담도 한국에선 바로 성희롱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 매사 발언에 조심하고 있다. 자칫 했다가는 아주 무례한 사람으로 찍힐 것 같아 항상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서 밴 습관을 버리지 못해 말을 함부로 하거나 여성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요즘 새삼 느끼는 것은 북한 여성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일들 가운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아마 대한민국 같았으면 사회가 뒤집혔거나 나라가 한 바탕 몸살을 앓았을지도 모르는
사건이다.

내용인 즉 이러하다.
2000년 초 어느 날 북한 전역의 각급 기관에 특별지시가 하달됐다. 『이제부터 여성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거리 곳곳에 여자 규찰대가 조직돼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지시를 미처 모르고 자전거를 타고나온 여성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됐고, 심지어 자전거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는 사회문화 방송시간에 단속자들의 눈을 피해 남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나는 한 여성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 망신을 주었다. 일부 연로한 남성들을 내세워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터뷰를 방송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가 여성들이 짓눌린 감정에 불을 지폈다.

한 남성은 인터뷰에서 『여자들이 자전거 타는 꼴은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에도 어긋난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자전거를 타는 것은 재수 없다』고 막말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이 나가자 정권수립 이래 처음으로 텔레비전방송국에 여성들이 집단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평양 여성들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우린 사람도 아니냐』며 거칠게 항의했고 여기저기에서 여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우리집 안사람도 김정일을 대놓고 욕하지는 못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하는 표정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전력난으로 평양시민의 교통수단인 무궤도전차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반 버스도 연료난으로 멈춰선지 오래였다.

직장에 나가는 여성들은 물론 가사를 돌보는 가정주부에게도 자전거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남한의 자가용처럼 북한에선 자전거가 집안의 자산 1호다. 국산 자전거가 변변치 않아 중국ㆍ일본에서 중고 자전거가 대량으로 들어오는데 일반근로자의 몇 년 월급을 다 털어서 겨우 한 대 구입해 애지중지 한다.

여성들은 자전거를 끌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집안을 먹여 살리고, 직장 여성들은 자전거로 수십 리 길을 왕복하며 출퇴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여자들은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니 여성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이런 조치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오혜선이라는 노동신문사 여기자의 교통사고가 발단이 됐다.

오혜선은 김정일의 측근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작전부(대남공작부서) 부장인 오극렬의 맏딸이다.

어느날 오혜선이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에 나섰다가 군용트럭에 치어 사망했다. 이 사실을 통보받은 김정일은 측근을 위로하면서 자신도 언젠가 지방에 나갔다가 여자들이 탄 자전거를 피하려다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면서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금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정일의 이 한마디에 자전거 하나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가던 북한여성들의 목줄을 쥐어짜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이 꽤 많았다.

이 사건 말고도 김정일의 어처구니없는 지시들은 몇 가지 더 있다.

1990년 초 치마자락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미니스커트) 입는 것을 금지시켰다. 중국에서 유행했던 빨간 바지가 북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지자 너무 자극적이라며 입지 못하게 했는가 하면, 1989년 임수경씨가 평양에 다녀간 이후 쫑대바지(청바지)가 유행하자 자본주의 날라리 바지라며 이 바지 입는 것을 강력 단속한 사실 등이다.

또 한 때 장발이 유행하자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다며 규찰대가 길거리에 늘어서서 장발한 청년들을 강제로 붙잡아 머리를 마구 잘라댄 적도 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실례를 더 들어보자.

호텔이나 여관에서 남녀혼숙이 금지된 북한에서 사람들이 눈길이 못미치는 으슥한 곳은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 평양 대동강변과 모란봉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모란봉일대에서 젊은 남녀들의 풍기문란 행위가 빈발해 보안원(경찰)의 집중단속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단속에도 아랑곳없이 한 여성과 성관계를 갖던 한 남자를 보안원이 발로 밟아 남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 그 남자는 당 간부의 아들이어서 김정일에게까지 보고됐는데 그 다음 나온 지시가 너무 웃겼다. 『행위를 할 때는 놔두고 끝난 다음에 체포하라.』 그때 많은 주민들이 『장군님은 인민들의 세세한 부분에도 너무 신경 쓰신다』고 비아냥 거렸다.

이러한 해프닝들은 어떤 정책결정이 폭넓은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와는 달리 김정일 개인 생각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북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지시나 결정에 대해 지적해줄 수 있는 당 간부들이 더 이상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5-11-02 13:53:07
203.xxx.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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