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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녘추억] 송환된 탈북여성들의 운명
 닉네임 : nkchosun  2004-07-07 10:00:10   조회: 5587   
김은혜(가명. 여, 35세)ㆍ 함북 무산 칠성세관 근무

내가 근무했던 칠성세관은 함경북도 무산군에 위치한 북-중 국경 세관이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자유주의 바람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일선의 관문이기도 하다.

무산군은 북한 최대의 철광석광산인 무산광산으로 유명하며, 출신성분이 불량한 사람들의 추방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광산촌인데다 토지가 척박하고 광산 이외에는 생업이 기반이라고는 없어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못되는 곳이다. 북한당국이 이른바 「적대계급」 출신자들을 이곳에 추방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런 무산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살만한 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개혁ㆍ개방 여파가 국경지역에까지 미치면서 그 덕을 보게 된 것이다. 재중동포 장사꾼들이 무산 장마당에 몰려와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은 90년 초부터로 기억된다. 이때부터 밀수꾼들, 탈북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청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가 얼마뒤 칠성세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런 저런 연고를 통해 알게 된 보위부 관계자의 「배경」을 동원한 덕분이었다. 세관은 생기는 것이 많은 자리로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먹을 알 있는」 노른자위 직종이다. 북한에서 세관은 국가안전보위부가 관리한다.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일반 노무자도 밖에 나가면 보위부의 권세를 등에 업고 행세를 하는 곳이다.

내가 칠성세관에 배치된 1997년 말은 북한에서 최악의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였다. 이곳에서 나는 경리업무와 행정서무일을 맡아 보았다. 당시 수많은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세관의 고유업무보다 탈북자 처리가 더 중요한 업무처럼 되고 있었다. 세관직원 13명 가운데 8~9명이 보위원이고 나머지는 일반 노무자였다.

그렇지만 탈북자들의 몸검사나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는 중국인들의 소지품 검사 등 온갖 궂은 일을 맡아해야 했다. 거기에 있으면서 고급 외제화장품을 쓰고, 압수되는 남한 TV드라마 테이프를 보면서 일반 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 하지만 탈북했다 잡혀오는 여성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죽기만큼 싫은 일이었다.

1998년 봄으로 기억된다. 매주 1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칠성세관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같은 여성인 내가 주로 검사했는데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본의 아니게 못되게 놀 수밖에 없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고 짐승처럼 다룰 때는 나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와 자괴에 빠질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또 한 무리의 탈북자들이 국경 다리를 건너 세관에 잡혀 들어왔다. 그 주에만 두 차례나 탈북자들이 송환됐다. 하도 많은 탈북여성들을 경험하다 보니 대충 얼굴만 봐도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도사가 됐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여성들 가운데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정말 예쁜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쌍꺼풀 진 눈이며 오뚝한 코, 키도 늘씬하고 정말 예뻤다. 손목에 빡빡하게 채워진 수갑 때문에 살갗이 벗겨져 있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 여자가 당할 봉변들을 생각하자 너무 안쓰럽게 여겨졌다.

평소에 여자들만 보면 못되게 노는 진호라는 보위지도원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얼굴도 반반한 년이 꽤 많이 벌려주었겠군!』 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중국 변방대(국경수비대) 장교에게서 건네받는 명단을 들고 진호가 이름을 불러댔다. 그의 이름은 김은정. 29세, 청진출생, 나와 동갑에 동향이었다.

도망칠까봐 족쇄 하나에 두 명씩 걸어서 끌고 갔다. 나는 보위부 지프차에 올라 그들을 뒤따랐다. 『김은혜, 네가 좀 수고 해야겠다.』 보위원이 나에게 부탁했다.

몸검사를 한다고 여자들 옷을 벗기는 것도 지겨웠다. 그러니 내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탈북자 대부분이 국경에서 인공기를 보는 순간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다고 한다. 같은 고향사람인 김은정이 옷을 몽땅 벗고 들어왔다. 규정대로 뒷짐을 지게 하고 다리를 벌려선 자세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게 했다.

탈북한 여자들이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마련한 달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돈을 삼키거나 항문 속에 숨기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런 동작을 시키는 것이다. 더 치욕스럽고 추악한 조사방법도 있지만 차마 다 밝힐 수 없다. 조사를 하는 나나, 조사받는 은정이도 더 이상 사람 같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모멸감에 피눈물이 흘렀고 나도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검사를 마치고 탈북자들에게서 나온 달러나 소지품을 보위원 진호에게 갖다 바쳤다. 모든 물품은 보위부장을 거쳐 국가에 반납된다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달러에 굶주린 보위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오후 보위원의 감시 아래 여자들을 인솔해 군(郡)병원으로 향했다. 여자들을 상대로 임신 여부, 성병 감염 등을 검사하기 위해서다. 임신한 여자는 상상을 초월한 처벌을 받게 된다. 중국인의 씨를 가졌다하여 더욱 가혹하게 다룬다. 검사 전에 밥이 들어왔는데 탈북자들은 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소금국에 누룽지 몇 조각을 넣어주는게 고작이었다.

은정이에게 처음으로 물어봤다. 『중국 어디 있었니?』 『연길에요.』 은정이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간신히 대꾸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산부인과에 들어가 한 명씩 피검사를 받고 소변검사도 받았다.

도망칠 우려가 있어 한명씩 감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정이가 다가와 나에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 왜 이러니?』 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거의 애원하듯 『언니 정말 평생 은혜를 잊지 않을 테니 언니 소변을 대신 좀 내주면 안 될까요? 제발…』 나이가 동갑이지만 그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배가 약간 불러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그를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기의 아버지를 그는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 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피검사 등 다른 검사를 거치면서 은정이의 임신사실은 드러났다.

또 한 차례의 탈북자들이 잡혀들어와 보위부로 향하던 어느날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정말 어이없는 광경앞에 내 자신이 넋을 잃고 말았다. 보위부 앞마당에서 은정이가 양손에 15kg짜리 물통을 들고 뛰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강제유산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아기의 생명이 끈질겼는지 그렇게 30분을 뛰어 그녀가 지쳐 쓰러졌는데도 하혈은 없었다. 임신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탈북여성들을 강제로 끌어내 주변에 세워놓고 있었다.

물통을 들고 뛰어도 안 되자 이번에는 양손에 귀를 잡고 오리처럼 앉아서 가게 하는 처벌이 가해졌다. 은정이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위원 진호가 소리쳤다.

『중국놈의 새끼를 배든, 한국놈의 새끼를 배든 우리 피가 아니면 모조리 이렇게 될 것이다. 니들이 여기서 나가 중국으로 또 뛰든(탈출하든) 상관없다. 이년들아 몸을 팔아도 제대로 팔아 앙? 더러운 피 받아오지 말고…』 하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드디어 은정이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생리대도 없이 옷을 찢어 간신히 막고 있었다. 나는 그가 너무 안쓰러워 시장에 나가 중국산 생리대를 사서 건네줬다. 나이도 같고 고향도 같은 그가 서로 다른 처지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다.

은정이의 경우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만삭이 돼 넘어오는 여자들은 일단 아이를 낳게 한 다음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기를 얇은 비닐로 싸 질식사시킨 뒤 버린다. 죽임을 당하는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다 표현하랴. 짐승도 그렇게는 안 죽일 것이다. 그 누구든 중국에서 임신한 뒤 들어온 아기는 모두 죽어야 한다. 동서고금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국가가 인민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탈북했으면 가슴아파 하고 보살펴줄 대신 짐승보다도 못한 악행으로 처벌을 주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할 따름이다.

나도 결국 이 치욕스러운 세관생활을 청산하고 탈북의 길에 올랐다. 국경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친분관계가 있어 탈북하기는 남보다 훨씬 수월했다.

잡히면 나도 은정이처럼 그런 치욕을 당하겠지 하는 생각이 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스라치듯 놀라곤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잡히지 않아 그런 치욕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적지 않은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끌려간다고 한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무고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넘겨져 이러한 반인륜행위를 당하지 않도록 한국정부와 국제사회가 좀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
2004-07-07 10:00:10
203.xxx.xxx.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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