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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으로 보는 북한] 57년 천리마운동
 닉네임 : nkchosun  2002-05-06 16:06:00   조회: 2509   
6·25전쟁이 휴전으로 봉합된 후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추스린 북한은 본격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동을 걸어 1957년부터 5개년계획에 들어간다.

5개년계획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전후 노동당의 경제건설 기본노선에 기초해 사회주의 공업화의 기초 축성과 의식주 문제의 기본적 해결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출발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난관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8월 종파사건(1956.8)으로 야기된 노동당 지도부의 분열과 정쟁을 수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54년부터 시작한 농업협동화를 마무리하고 공업화의 기틀을 다져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특히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현실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56년 6월 1일부터 50일 가까운 장기 외유에 올라 소련과 동유럽을 순방하며 외자유치와 기술협력을 모색했으나 빈 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5개년계획의 기조를 근본부터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당중앙위원회 56년 12월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에 입각한 대중동원과 증산·절약을 강조한 것은 이런 형편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그 구체적 표현이 천리마운동이었다. 천리마운동은 주민들의 혁명적 열의와 집단적 혁신을 통해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정면 돌파의 해법이었다.

김일성은 전원회의가 끝난 직후인 1956년 12월 28일 남포의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소)를 찾아 협의회를 열고 『동무들이 다음해에 강재를 1만t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다』며 증산을 촉구했다. 현상타개를 위한 돌파구를 강철생산에서 찾고 이를 경제 각 부문으로 확대시켜 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2월 5일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전당과 전체 인민들을 대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절약하자고 호소하면서 천리마운동은 궤도에 올랐다.

천리마운동은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마(千里馬)의 설화에서 착안한 것으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는 이 운동의 의도와 방향을 적절히 대변해주고 있다. 천리마운동이 전개되면서 간부들과 근로자들의 소극성·보수주의·기술신비주의가 비판의 공세를 받았다. 다른 나라의 기준과 「공칭능력」(규정된 기계와 설비의 생산능력)에 매달리는 안이함은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천리마운동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혁명 초기의 앙양된 열정과 전후 새 사회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에 힘입어 일정한 성과를 거두며, 1958년 9월 열린 전국 생산혁신자대회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모택동이 대약진운동을 시작하면서 15년 내에 영국을 따라잡겠다고 호언했던 것처럼 가까운 장래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며 자신감과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천리마운동이 지속되면서 개별 근로자 사이에 실적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유발되고, 그것이 위화감으로 표출되면서 부작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의 혁명적 열의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들해지면서 대중동원의 역동성도 한계에 부닥치고 있었다.

북한이 1959년 2월 천리마운동을 집단적 혁신과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결합시킨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전환시킨 것은 이런 요인을 고려한 조치였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은 70년대 중반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으로 변신하며 90년대 말에는 제2의 천리마대진군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기도 한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2002-05-06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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