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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북지식인들의 행로](6) 임선규
 닉네임 : nkchosun  2001-02-04 23:02:00   조회: 3931   

◇사진설명: 1935년 개관한 동양극장의 극작가 임선규(가운데)와 배우들.

'홍도야 우지마라'쓴 극작술 귀재
"홍도야 우지마라". 한국인의 영원한 누이 홍도를 통해, 가난하지만 정결했던 시대를 낭만적 감수성으로 떠올리게 하는 우리민족 정서의 부표(부표)와도 같은 연극이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오빠의 친구인 대학생과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가 될 만한 이 대중신파극의 명성에 비해, 이 극을 쓴 작가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임선규(임선규). 일제시대 최고 인기배우였던 문예봉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광복후 부부가 월북을 택하면서 우리의 기억속에서 스러져갔다.

남로당 창당대회 연극 발표...북으로 간후 '폐인
아내 문예봉은 '인민배우'칭호받고 안정된 삶

"홍도야 우지마라"는 유랑 극단들이 나중에 임의로 지은 이름이었고, 첫공연 때의 제목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희곡 원제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였다. 이 연극은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었던 동양극장 전속극단이던 청춘좌에 의해 1936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초연되었다. 초만원을 이룬 관객들은 홍도의 불행 앞에서 한 몸이 되어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종연 후에도 극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법정에 선 홍도가 오빠의 감동적인 변론으로 무죄선고를 받게 되는 후속편까지 제작되었고, 한꺼번에 전후편이 상연되기도 했다. 재공연은 쉬임없이 계속됐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30년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대중 신파극의 상징이 됐다. 1940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김영춘(김영춘)의 노래로 주제가(‘홍도야 우지마라’)도 만들었다. 임선규의 인기는 40년대까지 이어져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동학당’의 정읍 공연 때는 이를 보기 위해 몰려 온 관객들로 인해 배우들조차 여관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임선규의 월북과 이후의 생은 아내이자 조선 은막계의 "퀸"이었던 문예봉의 행적과 분리하기 어렵다. 문예봉은 1932년 16세의 나이로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에 출연해 일약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문예봉의 인기는 신문 학예면(문화면)을 끊임없이 달구었고 거리에서 우연히 친구 아이를 안고 있어도 그의 "모성애"가 회자될 정도였다. 그는 "3천만의 연인"이었다.

임선규는 무학이었던 문예봉에게 글과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친일 행적은 광복후 자신들의 운명을 낚아채고 만다. 임선규는 일제말엽에 "반도 최초의 지원병 주제극"인 ‘동백꽃 피는 마을’을 쓰고 친일연극단체에 가담하거나 일본 고위관료와 친분을 맺는 등의 행적을 보였다. 문예봉 또한 어용영화나 국책영화에 출연했다.

친일 경력은 광복후 좌익 단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는 요소가 된다. 광복후 절필 상태로 지내던 그는 친일이라는 형벌에서 면죄부를 받기 위해 남로당 창단대회장에서 선동적 내용으로 가득찬 낭송 형식의 연극(슈프레히콜)인 "긴급동의"를 발표한다.

그러나 정부 수립후 좌익단체 검거령이 내려지자 이때의 좌익 경력이 다시 현실적 공포로 다가오게 되고 결국 48년경 월북 하게 된다. 문예봉의 고향이 함흥이었던 점도 북한을 향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의 임선규의 삶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문예봉의 행적은 비교적 소상하다. 월북 이듬해 문예봉은 북한의 첫 혁명 극영화 ‘내고향’에서 혁명가의 아내역으로 출연했고, 52년에는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납북된 이광수의 전향을 위해 문예봉의 미모가 동원되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그도 남로당 숙청과 "피바다예술"의 본격적인 대두로 인해 북한 무대예술계에서 한동안 모습을 감춘다. 청순미와 조선적 여성미가 더해진 애상적인 이미지가 항일빨치산 혁명예술에서 투사의 역할을 하는 데는 결함이 되었다. 문예봉은 1965년 잡지 조선영화에서 나운규를 "천재적인 예술가이며 정열적인 인간"으로 묘사한 수필이 화근이 돼 반혁명반동으로 몰려 안주협동농장으로 추방된다. 나운규는 '임자없는 나룻배’에서 신출내기였던 문예봉의 연기를 탄탄하고 개성적인 연기로 뒷받침 해준, 자신에게는 "선생님"과 같은 존재였다.

임선규도 당시 서울에서부터 앓았던 폐결핵이 악화되고 당 방침에 맞는 작품을 써 내지 못해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문예봉과 별거 상태로 주을 온천부근의 결핵 환자 요양소에서 여생을 보내다 1970년 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예봉은 1980년 춘향전의 월매역으로 복귀하면서 복권되었다.

문예봉의 복권은 나운규와 영화 ‘아리랑’의 복권과 상관관계를 갖는 듯하다, 1970년만 해도 나운규는 북한 문예사전에 "사상성없는 퇴폐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감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993년 문학예술사전은 아리랑에 대해 "부족점은 있으나 당시 인민들의 지향과 농촌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영화적 형상수법을 혁신한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로 평가하고 있다.

문예봉은 1982년 김일성 70회 생일을 맞아 배우로서는 최고의 영광인 "인민배우"가 되었고 국기 훈장 제1급을 받았다. 4남매와 13명의 손자 손녀를 두었던 그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다 1999년 3월 26일 사망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명의로 된 부고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직하였으며 우리당의 문예정책 관철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였다"고 그를 기렸다. 문예봉의 다복한 말년의 모습이 부각된 반면, 일제시대 비애와 메마름으로 가득찼던 대중들의 감정에 정화의 눈물과 주술적인 감동을 선사했던 뛰어난 대중극 작가, 남편 임선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임선규(1910?-1970?) 누구인가

일제시대 대표적인 대중극 작가로 80여 편을 저술했다. 본명은 임승복(임승복). 충남 논산 출생이다. 강경상업학교를 3학년 때 중퇴했다. 조선연극사에 연구생으로 입단, 같은 연구생이었던 문예봉(문예봉1917~1999. 본명 문정원ㆍ문정원)을 만나 1933년 결혼했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었던 동양극장 전속 극작가가 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우지마라의 원제)를 썼고, 1939년 아랑으로 옮겨 역사극 김옥균 동학당 같은 민족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문제작을 발표했다. 동경에 유학해 일본의 대표적 작가 기쿠지강(국지관)을 사사했으며, 일제말엽 총독부 주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해 "빙화" "꽃피는 나무" 등을 출품, 친일작가로 규정됐다. 1948년경 문예봉의 뒤를 이어 월북, 1970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복 문학평론가 qbread@hananet.net
2001-02-04 2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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