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의주군(義州郡)
 닉네임 : NK조선  2013-11-01 15:09:38   조회: 1387   
 첨부 : 5040.gif (25044 Byte) 
의주는 조선시대 명, 청나라와의 무역과 상업이 성했으며, 서북지방의 국경관문이었다. 평안북도 북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삭주군과 천마군, 남쪽은 피현군, 서쪽은 신의주시,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의주시와 역사가 같은 의주군은 단군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가 발해가 망하자 거란의 근거지가 되었다. 고려가 건국되자 북진정책으로 거란 등 북방세력과 충돌이 잦았고 993년(성종 12년) 거란의 1차 침입때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 영토로 수복되어 강동 6주의 하나인 홍화진이 설치되었으며 용만현 또는 화의라고 불렸다.

의주군은 문종 때 포주, 1221년(고종 8년)엔 함신 등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선 정주, 의주로 불렸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에서 임경업이 400명의 병력으로 산성을 지켰다. 1895년 부군제로 바뀔 때 의주부가 되었고 이듬해 지방제도 개편시 평안북도 의주군이 되었다. 1921년 도청이 신의주로 이전되었고 31년 의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방 전에는 1개 읍(의주), 12개 면으로 현재의 삭주군, 천마군, 피현군, 신의주시 일부를 포괄하고 있었다.

1952년 12월의 행정구역 개편과 그 뒤 여러 차례 개편으로 의주군은 1개 읍(의주)와 18개 리(홍남, 대산, 서호, 룡운, 어적, 룡계, 미송, 수진, 대화, 연문, 운천, 금광, 대문, 중단, 춘산, 추, 삼하 연하)와 1개의 노동자구(덕현)로 되어 있고, 군 소재지는 의주읍이다.

자연환경

백마산(410m), 금강산(525m) 등 500m 안팎의 산들이 있는 남쪽과 동쪽이 산지대로 되어 있고,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압록강 연안은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또 압록강에는 어적도, 구리도, 수구도 등 10여 개 섬이 있다. 산림은 군 넓이의 57%를 차지하고 소나무, 참나무가 많다.

기후는 대륙에 연접한 만큼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기온은 8.4℃, 1월은 -9.7℃이고 8월은 23.9℃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034mm이다. 첫서리는 10월 8일 경 마감서리는 이듬해 4월 20일 경에 내린다. 군에는 압록강을 제외하고는 큰 하천이 없다. 대문리에는 금광저수지가 있다.

의주군과 피현군의 경계에 동서로 길게 자리한 백마산(410m)은 의주군 남서부와 피현군 북서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기반암은 화강편마암이고, 산에는 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고, 산기슭에는 전후 새로 조성한 백살구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 산에는 고구려 때에 쌓은 백마산성이 있다.

주요산업 및 특산물

공업은 채굴공업을 통해 철광석, 유색금속광물, 비금속광물 등이 생산된다. 또한 강냉이를 종합적으로 가공 처리하여 갖가지 식료품을 만드는 의주곡산공장 등이 있으며, 누에고치실과 고치솜은 이 고장의 특산물이다.

주요 곡물은 강냉이, 벼, 콩인데, 곡물에서 강냉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곳은 또한 삼의 명산지이며 땅콩도 많이 심는다. 소, 염소, 돼지, 닭 등의 집짐승이 많으며 사과, 배, 복숭아 등의 과일도 생산한다.

교통 및 명소

1970년 이후에 건설된 남신의주와 덕현을 이어주는 덕현선이 있고, 신의주, 천마, 피현군으로 통하는 도로가 뻗어 있다. 서호리, 룡운리 같은 섬지대와 대화리, 수진리를 비롯한 압록강가의 지역에서는 배가 운송수단이 되고 있다.

의주금강: 의주금강은 의주읍 동쪽 8km 지점에 있는 석승산으로 이 산의 경치가 금강산에 결줄 만해서, 의주금강이라 부른다. 금광사와 추월암이 있고 서쪽 송산엔 천왕사가 있다.

금광사: 금강사(金剛寺)라고도 부르며 금광리 금강산에 있는 절이다.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849년(조선 헌종 15년)에 중건했다. 대웅보전, 백화전, 청운당, 만세루 등 11개 건물이 남아 있다.

의주팔경 : 조선시대에 이 고장의 여덟 곳의 경치를 가리킨 것이다.

- 압수춘파(鴨水春波) : 봄바람이 일고 있는 압록강의 파도
- 골령모운(골嶺暮雲) : 골령의 저녁 안개
- 송산욱일(松山旭日) : 송산의 일출
- 해문비우(海門飛雨) : 비내리는 해문의 모습
- 조도황로(鳥島黃蘆) : 조도의 가을 갈대숲
- 요교송객(凹橋送客) : 요교에 오고가는 나그네 모습
- 평원엽기(平原獵騎) : 들판의 수렵 광경
- 용연취벽(龍淵翠壁) : 구룡연가의 이끼 낀 절벽

의주읍성 : 의주 일대는 압록강을 끼고 있어 고구려 때부터 전략적 요새로 중요시되었으며 그 때 이미 성이 쌓아졌다. 고구려 때 쌓은 성은 발해를 거쳐 고려 때에도 북방방위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고려 때 의주는 룡만현 또는 화의로 불렸고 15세기 중엽 의주에는 진이 설치되었으며 1520년에 대대적인 개축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때 개축된 성의 둘레는 2만 7531자로서 종전 성 둘레의 거의 2배가 되었으며 동서남북에 용성이 있는 성문들이 설치되었고 성안에는 1개의 못과 4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무렵 치들과 포루, 장대 같은 것도 세웠다. 지금 의주읍성엔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네모나게 다듬은 돌로 쌓은 성벽의 높이가 5m가 되는 곳도 있다. 성문 가운데 의주 남문이 남아 있고 서문인 안파문터에는 무지개문과 그 위에 섰던 문루의 주춧돌이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포루이던 환학정, 판어정의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의주읍성은 일제시대 '도시건설' 등의 미명하에 무참히 파괴되었다. 이 성은 북방방위의 가장 중요한 관문의 하나였다.

통군정(統軍亭): 통군정은 의주성의 북쪽장대로 세워진 누정이다. 의주성에서 제일 높은 삼각산 봉우리에 있어, 그 아래의 압록강과 근방 일대를 내려다보며 군사를 지휘하기 좋게 되어 있고, 경치가 수려해 관서8경의 하나이다. 통군정은 언제 세워졌는지 기록이 없으나 의주성이 고구려 때 쌓아져 1520년 개축 되어 의주읍성이 되었듯이 통군정의 전신도 그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990년에 편찬된 <임사홍기>에 통군정이 언제 세워지고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지금의 통군정은 1478년에 재건한 것이다. 그 후 1538년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보수해왔지만 15세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통군정은 조선조 초기 우리나라 누정 건축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의주읍성 남문: 래훈루, 장변루라고도 부르는 이 남문은 의주읍성에 있던 4개 성문 가운데 하나로 예로부터 서북지방의 관문역할을 해 '해동제일관'이란 현판도 걸려있었다. 성문의 안쪽으로 약 1000m 떨어져 있는 삼각산 위에 통군정이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행성(行城): 평안북도, 자강도, 함경북도의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 기슭에 쌓은 이 행성들은 북방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15세기 40년대부터 16세기 초까지 축조되었다. 1440년 의주로부터 경원에 이르는 구간에 긴 행성을 쌓기로하고 그 이듬해 종성을 수주강변으로 옮기고 그곳에 5개의 보, 회령에 3개의 보를 세우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행성축조가 시작되었다. 행성들은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적들의 침입로가 예견되는 골짜기나 평지부분에 주로 쌓았는데, 급한벼랑은 그대로 성벽으로 이용하고, 언덕 앞쪽을 수직으로 깎아내려 성벽으로 삼은 곳도 있다.

고려 천리장성: 천리장성은 압록강 하구부터 평안북도의 북쪽과 자강도의 희천지방 평안남도의 북단을 가로질러 함경남도 정평군 바닷가에 이르는 1000여 리에 쌓은 장성이다. 성벽의 대부분은 돌로, 곳에 따라 흙으로 쌓은 곳도 있으며, 산 경사면에는 외면축조방법을 사용했고, 험한 절벽을 지나는 곳에는 절벽자체를 성벽으로 삼았으며 평지에서 양면축조방법을 적용했다. 성벽의 높이는 남아있는 곳이 4∼7m 정도이다.

미송리 유적: 의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언덕의 석회암층에 뚫린 동굴 안에 있다. BC 8세기∼BC 7세기로 추정되는 이 유적은 아래 문화층은 새김무늬그릇을 기본으로 하는 신석기 시대층이고 윗문화층은 고조선시기의 것으로 이곳에서는 청동 도끼와 질그릇 그리고 끌, 활촉, 가락바퀴 등의 석기와 벽옥을 만든 관옥이 나왔다.

금광저수지: 대문리에 있는 이 저수지는 넓이가 1.98㎢로 금광천을 막아 건설했다. 금광천 하류 연안의 1100정보의 땅에 관개를 하고, 잉어, 백년어, 붕어 등을 기르는 양어장으로도 활용된다.
2013-11-01 15:09:38
203.xxx.xxx.242


닉네임 :  비밀번호 :  자동등록방지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96
  운전군(雲田郡)   NK조선     2013-11-01   806
95
  의주군(義州郡)   NK조선     2013-11-01   1387
94
  정주시(定州市)   NK조선     2013-11-01   1182
93
  창성군(昌城郡)   NK조선     2013-11-01   694
92
  천마군(天摩郡)   NK조선     2013-11-01   709
91
  철산군(鐵山郡)   NK조선     2013-11-01   1085
90
  태천군(泰川郡)   NK조선     2013-11-01   741
89
  피현군   NK조선     2013-11-01   722
88
  향산군(香山郡)   NK조선     2013-11-01   782
87
  ↓량강도(兩江道)   NK조선     2013-11-01   1011
86
  갑산군(甲山郡)   NK조선     2013-11-01   817
85
  김정숙군(金正淑郡)   NK조선     2013-11-01   753
84
  김형권군(金亨權郡)   NK조선     2013-11-01   821
83
  김형직군(金亨稷郡)   NK조선     2013-11-01   645
82
  대홍단군(大紅湍郡)   NK조선     2013-11-01   762
81
  백암군(白岩郡)   NK조선     2013-11-01   870
80
  보천군(普天郡)   NK조선     2013-11-01   701
79
  삼수군(三水郡)   NK조선     2013-11-01   849
78
  삼지연군(三池淵郡)   NK조선     2013-11-01   1042
77
  운흥군(雲興郡)   NK조선     2013-11-01   579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